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왼쪽)이 지난 20일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로마/신화 연합뉴스
독일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중국과 정상 통화가 이뤄졌다. 경제·무역관계를 중심으로 실용성과 안정성에 방점을 뒀던 앙겔라 메르켈 전임 총리 시절의 양자관계 기조가 유지될 수 있을 지에 관심이 쏠린다.
22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전날 밤 전화 통화를 하고 양국 관계와 국제적 현안 전반에 대해 논의했다. 두 정상 간 통화는 지난 8일 숄츠 총리 취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시 주석은 통화에서 “중-독 양국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서 상호 존중에 기반해, 공통점을 찾고 차이는 극복하는 공생협력을 추구해왔다”며 “내년 양국 국교 수립 50주년을 맞아 정치적 상호 신뢰를 심화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확대·강화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독 관계가 기존처럼 실용적 태도를 유지하고, 상호 이익을 적극 추구하기를 바란다”며 “숄츠 총리와 양국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키는 데 협력할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중국은 5년 연속 독일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라며 “독일 기업이 강점을 발휘해 중국의 개방이 가져올 새로운 기회를 잡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시 주석은 나아가 최근 변화 조짐을 보이는 중국-유럽연합(EU) 관계에서도 독일에 적극적 역할을 요청했다. 그는 “중-독 협력은 최근 몇 년간 중국과 유럽 간 협력의 ‘선두주자’였다”며 “상호 존중과 공생·공영의 원칙에 따라 중국-유럽 관계가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독일이 양자 관계에 안정성과 긍정적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와 코로나19 대응 등 국제 현안과 관련해선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국 구도’를 의식한 듯 다자주의와 민주적 원칙을 새삼 강조했다. 그는 “패권주의와 냉전적 사고에 단호히 반대하며, 대화를 통해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며 “각국이 함께 발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발전”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독일 쪽에선 두 정상이 “양국 협력 및 경제 관계 심화 문제와 유럽연합-중국 관계 발전, 국제적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고만 밝힌 채, 구체적 언급은 내놓지 않았다. 이와 관련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숄츠 총리는 ‘상호 존중과 신뢰의 정신에 바탕해 독-중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이는 전임자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 시절의 입장과 일치한다”고 짚었다. 중국은 이날 숄츠 총리가 “독-중 당국 간 새 협의 틀을 마련해 청정 에너지, 디지털 경제, 서비스 산업 등의 분야에서 양국 간 실질적 협력을 강화할 것”이며, 지난해 말 체결된 유럽연합-중국 간 포괄적 투자협정에 대해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발효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공개했다.
문제는 이런 입장이 숄츠 총리의 사회민주당이 지난달 녹색당·자유민주당과 이른바 ‘신호등 연정’을 구성하며 합의한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타결된 합의문에서 신호등 연정에 참여 3당은 “유럽연합 차원의 단일한 대중국 정책의 한 부분으로서, 독일은 민주적인 대만이 국제기구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지지한다”며 “신장 자치구 문제를 포함한 중국의 인권탄압에 대해 보다 분명히 발언할 것이며, 홍콩의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이 복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숄츠 총리가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 유럽연합-중국 간 포괄적 투자협정 문제만 봐도, 유럽의회가 협정 비준을 보류한 것은 유럽연합이 취한 신장위구르 인권 관련된 제재에 중국이 보복 제재에 나선 탓이다. 연정 협상 때 3당이 “현재로선 협정을 비준할 수 없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독-중 양쪽 발표문 모두에서 중국의 인권 상황과 관련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유럽연합이 “민주주의적 원칙과 정치적 다원주의를 저버렸다”고 비판한 지난 19일 홍콩 입법의원 선거 관련 내용도 빠졌다. 이 역시 연정 구성 합의안에 밝혀 적은 “신장을 포함한 중국의 인권 상황에 분명한 입장을 밝힌다”는 것과 차이가 있다. 이를 두고 향후 독일 연정 내에서 대중국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될 수 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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