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공동위원장 김부겸·윤성로)가 사전에 대만 장관급 인사의 행사 참여를 요청한 뒤 당일 돌연 취소해 입길에 오르고 있다. 대만 외교부는 이례적으로 타이베이 주재 한국 대표부 대리대표를 불러 항의했다.

21일 <대만중앙통신>(CNA)의 보도를 종합하면, 탕펑(오드리 탕) 대만 행정원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무임소 장관)은 4차산업혁명위 주최로 지난 16일 서울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글로벌 정책 콘퍼런스’에서 주제 발표를 할 예정이었다. 탕 위원은 행사 당일 오후에 열린 ‘사회혁신’ 분야 토론에서 ‘지구를 지키는 미래기술―기후위기와 감염병에 대한 인류 대처방안’을 주제로 한 발표자 4명 가운데 1명으로 지난 9월 공식 초청됐으며, 이날 화상으로 참석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행사날 토론을 불과 몇시간 앞두고 주최 쪽이 대만 당국에 탕 위원의 발표가 취소됐다고 전자우편으로 통보했다. 취소 결정을 내리며 위원회가 밝힌 이유는 “양안(중국-대만) 관계의 여러 측면을 고려”했다는 것이었다. 탕 위원의 토론 참석과 관련해 중국의 압박이 있었음을 내비친 셈이다. 애초 주최 쪽은 행사 홍보전단에 탕 위원의 직함을 ‘대만 디지털 장관’으로 표기한 바 있다.

장쥔위 대만 외교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국장은 20일 홍순창 주타이베이 한국 대표부 대리대표를 불러 ‘외교적 결례이자 부적절한 조치’라고 공식 항의했다. 탕뎬원 한국 주재 대만 대표처 대사도 한국 정부 쪽에 엄정한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이 논란에 대해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제반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만과 비공식적 실질 교류를 지속 증진해 나간다는 정부의 기본 입장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탕 위원이 수모를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 초청으로 10일 열린 ‘민주주의 정상회의’ 이틀째 행사에 화상으로 참석해 ‘디지털 권위주의 대응 방안’을 주제로 한 패널 토론에 참여했다. 그런데 탕 위원의 발언 자료에 중국과 대만을 다른 색으로 표시한 지도가 등장하면서, 후속 발언 때 화면이 끊기고 음성만 전송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미국과 대만 양쪽은 “단순한 기술적 오류”라고 해명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김지은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