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9~10일 화상회의 방식으로 개최하는 ‘2021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초청한 국가는 110곳에 이른다. 유엔 회원국이 193개국임을 고려하면 ‘작은 유엔 총회’로 부를 만하다. 각국 정부뿐 아니라 국제기구와 시민사회까지로 참여 폭을 넓혔다.
미 국무부가 밝힌 회의 주제는 △권위주의에 맞서 민주주의 수호 △부패 해소 △인권 촉진 등 크게 세가지다. 지난달 23일 공개한 초청 명단에 들지 못한 ‘권위주의’ 국가엔 예상대로 중국과 러시아가 포함됐다. 중국의 격한 반대에도 대만은 초청장을 받았다. 미국이 대만을 끼워 넣은 노림수는 분명해 보인다. 대만을 매개로 현재 치열하게 진행 중인 미-중 전략경쟁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란 이념 대결 구도로 몰고 가겠다는 것이다.
현재 미-중 경쟁의 최전선으로 떠오른 ‘대만 문제’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오른다. 청나라가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공식 합병한 것은 1887년이다. 불과 얼마 뒤 청일전쟁(1894~95년)에서 패한 청은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대만과 펑후섬을 일본에 영구 할양했다.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연합군이 대만의 통제권을 쥐게 된다. 연합국은 전승국의 일원인 ‘중화민국’의 장제스 정부에 군사점령권을 대리하도록 했다. 그로부터 4년 뒤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제스와 국민당 지지자들은 대만으로 건너와 일종의 망명정부를 세우고 계엄령을 선포(1987년 해제)했다.
대만으로 옮겨온 뒤에도 중화민국은 유엔 창립 회원국으로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은 유엔 가입조차 하지 못했다. 1971년 모든 게 바뀌었다. 그해 7월 헨리 키신저 당시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했다. 중-소 갈등으로 시름 중인 중국을 미국 쪽으로 끌어당겨 소련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작용한 결과였다.
석달 뒤 제26차 유엔 총회에서 ‘유엔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합법적 권리 회복에 관한 결의안’이 제출됐다. 미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중국 쪽에 넘겨주는 대신 대만의 회원국 지위를 유지시키려 했다. 중국은 ‘두개의 중국’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해 10월25일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가 채택됐다. “총회는 유엔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이며,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일원임을 인정하고, 그 모든 권리를 회복시키기로 결정하며, … 유엔 및 산하 기구를 불법 점거해온 장제스 정부 대표단을 즉각 축출하기로 결정한다.” 이 결정에 따라 유엔 내 대만의 운명이 ‘퇴출’로 결론 났다. 대만 외교사에서 ‘대재앙의 날’로 기록될 만한 참사였다.
그 이듬해인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 미·중은 상하이 코뮈니케를 통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고,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1979년 1월1일을 기해 중국과 수교하고, 대만과 단교했다. 1971년 68곳이던 대만의 수교국은 점점 줄어 현재 15곳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중국의 수교국은 53곳에서 180곳으로 늘었다.
이후 대만은 세가지 방식으로 유엔 무대를 두드렸다. 첫째, 대만 태생으로 최초로 집권한 국민당 리덩후이 총통 시절(1988~2000년)엔 ‘중화민국’이란 공식 국호를 사용해 ‘복귀’를 시도했다. 둘째, 사상 첫 정권교체로 집권한 민진당 천수이볜 총통 시절(2000~2008년)엔 ‘대만’이란 이름으로 ‘신규 가입’을 시도했다. 한국과 독일 등 분단국가에서 교차승인을 통해 유엔에 가입한 선례를 활용한 행보였지만,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막혀 무위에 그쳤다.
유엔 회원국 가입은 안보리 추천을 거쳐 총회 표결에서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가능하다. 중국이 거부권을 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에 있는 한 ‘중화민국’도 ‘대만’도 회원 가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민당 마잉주 총통 집권기(2008~2016년)에 대만이 유엔 및 산하 국제기구에서 ‘의미있는 참여’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도 이 때문이다. 차이잉원 현 총통 정부의 정책 기조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자 미국이 대만을 거들고 나섰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총회 결의 채택 50주년에 즈음한 지난 10월 “대만의 유엔 체제 참여는 정치적인 것이 아닌 실용적인 차원의 문제”라며 “대만이 유엔 체제에 의미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모든 회원국이 지지해야 한다”고 새삼 촉구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의 유엔 참여 문제를 띄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뿐이 아니다.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며, 유럽연합(EU) 역시 대만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관여를 강화하고 있다. 유럽의회는 지난 1월 대만에 대한 개입정책으로 복귀하고, “민주적 대만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해야 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결의를 채택했다. 5월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유럽연합이 공동으로 중국의 인권 문제를 비판하며 대만의 ‘의미있는 국제기구 활동’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내놨다.
이런 외부 압박에 중국은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4일 <중국의 민주주의> 백서를 내놓고 “민주주의는 전 인류 공통의 가치이며, 특정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5일엔 외교부가 ‘미국 민주주의 상황’이란 장문의 보고서를 내어 “미국식 민주주의는 금권정치와 소수 엘리트주의일 뿐”이라고 질타했다.
대만의 유엔 및 산하 국제기구 참여에 대한 중국 쪽의 반대 논리는 일관적이다. 중국 외교부는 2차 세계대전 뒤 한반도나 독일과 달리 “중국의 주권은 분할되지 않았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주장한다. 그 연장선에서 “대만 문제는 순전히 중국의 내정”이라며 “주권국가로 이뤄진 유엔에 중국의 일부인 대만은 참여할 자격도 권리도 없다”고 강조한다. 이에 맞서 대만은 자신들을 유엔에서 퇴출한 유엔 총회 결의 2758호가 “유엔을 제외한 여타 국제기구에서 대만 참여를 배제하는 어떤 법적 근거도 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이 결의는 유엔에서 누가 중국을 대표할 것인가란 문제를 두고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이 아닌 본토에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택했을 뿐이란 얘기다. 덧붙여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래, 중국은 단 하루도 대만에 대한 주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즉 자신들에게도 주권이 있다는 주장이다.
대만인들의 ‘정체성’ 의식은 최근 눈에 띄게 높아졌다. 대만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센터가 1992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스스로를 ‘대만인’으로 인식한다는 답변은 전체의 17.6%였지만, 올해 조사에선 63.3%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중국인’이란 답변은 25.5%에서 2.7%까지 추락했다. ‘대만인이자 중국인’이란 답변도 46.4%에서 31.4%까지 낮아졌다. 대만 대륙위원회가 지난 11월 발표한 최신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4.9%가 ‘현상 유지’를 원한다고 답했다. 대만 독립(현상 유지 속 추후 독립 추진 또는 가능한 한 빨리 독립)을 원한다는 답변도 28.6%에 이르렀다. 반면 통일(가능한 한 빨리 통일 또는 현상 유지 속 추후 통일 추진)을 원한다는 답변은 8.5%에 그쳤다. 중국과는 다른 대만인이란 별도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대만이 어엿하게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참여하게 된 현실은 향후 양안 관계에 상당한 파장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미-중 전략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대만은 외교적 고립을 끊어낼 수 있을까. 나아가 미국의 지지 속에 대만의 ‘의미있는 유엔 참여’는 가능할까? 이념의 전장이 된 ‘국가 아닌 국가’에 살고 있는 2350만명의 대만인이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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