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해방군이 2019년 10월 처음 공개한 극초음속활동체를 탑재한 것으로 보이는 둥펑-17. 중국 인민해방군 제공
중국이 지난 8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 발사를 실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격화하는 미-중 갈등 속에 양국 경쟁이 전략무기 분야까지 번져가는 모양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17일 복수의 소식통 말을 따 “중국군이 최근 탄도미사일보다 낮은 궤도를 비행하다가 목표물을 타격하는 ‘극초음속 활공 비행체’(HGV) 시험 발사를 실시했다”며 “미사일은 목표지점에서 20마일(약 32㎞) 가량 벗어났지만, 기존에 파악하고 있던 것보다 기술적으로 대단한 진전을 보여 미 정보당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신문에 “중국이 어떻게 이 정도로 진전된 능력을 갖췄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신문은 “중국군이 시험 발사를 한 것은 지난 8월이며, 창청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며 “중국 쪽은 통상 창청 로켓 발사 사실을 공표하지만, 지난 8월 시험 발사 때는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국영 중국항천과기집단에 딸린 공기동력기술연구원(CAAA)이 극초음속 무기체계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해당 연구원 쪽은 지난 2018년 8월3일 “극초음속 비행체(싱쿵-2)가 창청 로켓에 실려 예정 고도까지 올려진 뒤, 고도 30㎞ 상공에서 마하 5.5~6의 속도로 6분 이상 비행했다”고 공개한 바 있다.
극초음속 활공 비행체는 로켓에 장착해 대기권 밖 높은 고도로 발사되며, 로켓에서 분리돼 대기권으로 재진입한 뒤 진행 방향을 바꿔가며 약 30~70㎞ 고도에서 마하 5(시속 6120㎞) 이상의 극초음속으로 활공하는 무기체계다. 탄도 미사일처럼 ‘발사-상승-중간-하강’ 등의 고정적인 포물선 궤적을 그리지 않기 때문에 비행 경로 예측이 어려운 탓에 현존하는 미사일 방어 체계로는 요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쟁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2014년 1월9일 산시성 타이위안 위성발사센터에서 첫 극초음속 활공 비행체 시험 발사를 실시했다. 당시 이를 탐지한 미 정보당국은 위성발사센터가 위치한 지역(우자이) 이름을 따 ‘우(WU)-14’란 이름을 붙였다. 중국 쪽이 지난 2019년 건국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둥펑(DF)-17’ 개발의 시작이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미사일 위협 관련 자료집에서 “중국은 2014년 1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적어도 9차례에 걸처 둥펑-17 시험 발사를 실시했다”며 “특히 2015년 6월7일과 8월19일에 각각 실시한 4차와 5차 시험발사 때는 미사일 방어체계를 피하기 위한 기동 능력에 중점을 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한 바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중국 핵무기 전문가인 테일러 프라벨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의 말을 따 “극초음속 활강체는 탄도 미사일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궤적을 비행하며, 비행 중 이동경로를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탐지 추적 요격이 더욱 어렵다”며 “중국이 핵탄두를 장착한 극초음속 활공 비행체를 보유한다면, 탄도 미사일 요격용으로 개발된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올 들어 핵무기 관련 투자를 전년 대비 4배까지 대폭 늘리고, 신장·간쑤·네이멍구 등지에서 탄도미사일용 격납고(사일로) 추가 건설에 나서는 등 핵무장 능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2010년 체결한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에 따라 실전 배치 핵탄두를 1550기 이하로 제한하고 있지만, 중국은 핵 군축 의무가 없는 상태다. 중국 쪽이 극초음속 미사일 분야에서 예상보다 성큼 앞서나가면서, 미국 내에서도 중국에 맞선 핵무기 현대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자칫 미-중 양국 간 전략무기 경쟁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내년 초 완성을 목표로 지난 7월부터 ‘핵태세 검토 보고서’(NPR)를 작성 중이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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