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힌두교의 대표적 성지 사바리말라 사원에서 지난해 11월 주지승이 성소를 개방하는 의식을 하고 있는 모습. 순례철을 앞두고 사바리말라 사원이 16일 문을 연 가운데, 여성의 사원 입장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찬반 진영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사바리말라/AP 연합뉴스
인도 힌두교의 대표적 성지 사바리말라 사원이 순례철을 맞아 참배객에게 문을 열면서 ‘젠더 전쟁’ 발생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이 10~50살 가임기 여성 신도의 사원 입장을 금지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물리력을 동원해 저지하는 보수파의 반격으로 찬반 논란이 재점화되면서 순례철을 앞두고 충돌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내년 1월 순례철을 앞두고 사바리말라 사원이 16일 문을 열었지만, 10~50살 가임기 여성이 사원에 들어갈 수 있게될지는 불분명하다고 미국 <시엔엔>(CNN) 방송이 보도했다. 지난해 위헌 결정으로 여성 신도의 사원 입장이 허용됐지만 ‘반대’ 탄원이 이어지자, 지난 14일 대법원이 이 사안을 ‘7인 위원회’에 회부해 다시 논의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물론, 대법원은 당장은 위헌 결정이 유효한 만큼 이번 순례철 여성의 사원 입장을 막는 조직적 행위에 단호하게 처벌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보수 반대파들은 사원에 들어오려는 여성은 법원 명령부터 받고 오라고 강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인도 남부 케랄라주 경찰은 만일의 충돌 사태에 대비해 이날 사원 부근에 경찰 2500명을 배치했다. 대법원 결정 이후, 지난 1월 순례철에 여성들이 사원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벌어지며, 최소 1명이 숨지고 최루탄과 물대포가 난무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던 전례가 있어서다. 1월 여성으로는 최초로 사발리말라 사원에 입장했던, 법대 교수 빈두 암미니와 지방공무원 카나카두르가는 협박 위협 등을 피해 몸을 피한 상태다.
8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사바리말라 사원은 ‘파괴의 신’ 시바와 ‘보존의 신’ 비슈누의 여성 화신인 모히니 사이에 태어난 ‘성장의 신’ 아야파를 모시는 힌두교의 대표적 성지다. 이 사원의 여성 입장 문제를 둘러싼 법적 논란은 “여성을 사원에 들이는 것은 ‘순결’을 간직해야 할 아야파신을 어지럽히는 행위”라는 보수 반대파들과 “종교와 전통의 이름으로 여성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인권 운동가의 주장이 맞서면서 1991년 이후 30년 가까이 진행돼왔다. 여성 신도의 입장 여부를 사원 승려가 결정하도록 하라는 판결을 거쳐, 지난해 9월 대법원이 여성 신도의 사원 입장 금지를 차별로 규정하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지만, 이번에 7인 위원회에서 재논의키로 함에 따라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비롯해 집권 인도국민당 역시 대법원의 위헌 결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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