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사토가 24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배우 브루스 홉킨스와 경찰관의 부축을 받으며 차별 반대 행진을 하고 있다. 라디오 뉴질랜드 트위터 갈무리
무슬림 50명이 희생된 테러를 겪은 뉴질랜드에서 95살의 2차대전 참전용사가 차별 반대 집회에 참가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존 사토는 24일 오클랜드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하려고 오전 10시에 남동부 교외 호위크의 집을 나섰다. 집회 장소인 아오테아광장까지 20여㎞를 가느라 버스를 네 번 갈아탔다. 현장에서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 출연한 배우 브루스 홉킨스와 경찰관의 부축을 받아 차별 반대 행진에 동참했다.
사토가 부축을 받으며 걷는 모습을 찍은 사진은 <가디언>이 매일 선정하는 ‘오늘의 사진’으로 꼽혔다. 사진을 본 뉴질랜드 매체들을 그의 거처를 수소문했고, <뉴질랜드 헤럴드>가 인터뷰를 내보내는 등 기사가 쏟아졌다. 사토의 집회 참여는 초유의 테러에 충격을 받은 뉴질랜드 사회가 스스로 치유하는 모습의 상징이 됐다.
사토는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스크 두곳에서 15일 일어난 사건으로 충격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날 이후 잠을 잘 못 잤다. 너무 슬펐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집회에서 보듯 뉴질랜드 사회가 차별 반대를 위해 뭉친 게 의미가 크다고 했다. 그는 “인종이건 뭐건 사람들은 문득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서로를 보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사토는 자신도 인종차별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으며, 2차대전 때 뉴질랜드군으로 참전해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당시 뉴질랜드군 내 일본계 두명 중 하나였다. 그는 “인종차별은 보통 비밀리에 이뤄진다”고 말했다.
사토는 혼자 산다. 아내는 15년 전 세상을 뜨고, 외동딸도 지난해 먼저 보냈다. 집회 참석 뒤 귀갓길에는 한 경찰관이 함께했다. 사토는 집까지 데려다준 경찰관 얘기를 하면서 “매우 친절했다. 크라이스트처치의 비극이 무엇을 가져왔는지 보라. 최고의 인간애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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