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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힌두 사원에 여성 출입을 허하라”

등록 2019-02-07 18:03수정 2019-02-07 20:49

인도 힌두 성지, ‘여성 입장 허용’ 놓고 갈등 격화
주 대법원 “금지는 위헌” 판결 이어 정부도 “허용”
극우 힌두 민족주의 반발…방화·분신 극단적 충돌
잠입한 여성 2명은 피살 위협…사원은 정화 의식
인도 남부 켈랄라주의 힌두교 성지인 사바리말라 사원은 매년 수백만명의 순례객으로 붐비지만, 가임기 여성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종교적 믿음이 논란이 되고 있다. ♣H6출처 위키피디아
인도 남부 켈랄라주의 힌두교 성지인 사바리말라 사원은 매년 수백만명의 순례객으로 붐비지만, 가임기 여성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종교적 믿음이 논란이 되고 있다. ♣H6출처 위키피디아
인도의 대표적 힌두교 성지인 사바리말라 사원은 언제까지 ‘금녀의 성전’으로 남아 있을까?

인도 남부 케랄라주 사바리말라에 있는 힌두 사원이 여성 신도의 입장 허용을 둘러싼 팽팽한 이견과 물리력 행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6일 케랄라주 정부의 종교위원회는 힌두 사원에 여성의 입장을 금지해온 종전의 방침을 뒤집고 “여성에게도 성소에서 기도할 권리가 있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논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케랄라주의 ‘트레반코르 데바사움(종교위원회)’는 종교계와 시민사회 추천 위원으로 구성된다. 이 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앞서 지난해 9월 케랄라주 대법원이 4대1의 다수 의견으로 힌두 사원에 10~50살 가임기 여성의 입장을 금지하는 수백년 전통에 ‘위헌’이라고 결정한 사법적 판단에 행정적 효력을 부여하는 조처였다. 대법원 판결은 그러나 뜻밖에도 이후 몇 달 동안 극단적인 대립과 무력 시위로 이어졌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케랄라주 집권당인 인도 공산당과 케랄라주 종교위원회는 사원 입장을 희망하는 여성 수십명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4.5㎞나 되는 사원 진입로를 지나 가파른 사원 건물에 오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여성도 사원에 입장하진 못했다. 극우 힌두 민족주의 세력이 주동이 된 군중이 돌을 던지고, 자동차에 불을 지르고, 경찰을 구타하면서까지, 여성들의 입장을 극구 막아섰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모든 힌두 사원이 여성의 입장을 금지하는 건 아니다. 포용과 사랑 대신 배제와 폭력의 현장이 된 성소는 18개의 황금계단으로 유명한 사바리말라 사원이다. 매년 수백만명의 순례객이 가파른 황금계단을 올라 사원에 들어가려 줄을 선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수세기 동안 10~50살의 가임기 여성은 힌두교의 대표적 성지에 발을 들일 수 없었다. 여성 입장에 반대하는 쪽에선 여성을 사원에 들이는 것은 신도들이 자신을 찾는 한 ‘순결’을 간직해야 할 아야파신을 어지럽히는 행위라며 반발한다. 지난해 12월엔 한 남성이 여성의 출입 허용을 반대하며 분신해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힌두 신화에 따르면, 아야파는 파괴의 신 시바와 보존의 신 비슈누의 여성 화신인 모히니 사이에 태어난 ‘성장의 신’이다. 고결한 다르마(법)의 정수이자 부처의 화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요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아야파신. ♣H6출처 위키피디아
요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아야파신. ♣H6출처 위키피디아
사원 쪽은 여성 입장을 추진하는 정부와 이에 반대하는 힌두 성직자 및 신도들 사이에 끼인 채 진퇴양난에 빠졌다. 새해가 막 시작된 지난달 2일엔 서른아홉살과 마흔살의 여성 2명이 새벽 3시45분께 야음을 틈타 가임기 여성으론 최초로 사바리말라 사원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다행히 다른 순례객들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들 여성이 언론 인터뷰에서 그런 사실을 밝히자 사달이 벌어졌다. 사원의 한 승려는 ‘정화 의식’을 위해 사원의 문을 닫았고, 성난 군중이 경찰에 폭발물을 던지는 등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많은 사람이 다치고 수천명에 체포됐다. 두 여성은 안가로 대피했다가 귀가했는데, 그 중 한 여성은 화난 시어머니에게 나무 몽둥이로 심하게 얻어맞아 병원에 실려갔다고 한다. 다른 한 여성도 끊임없는 살해 위협에 시달린다.

지난 6일 주 정부 종교위원회의 결정이 나온 날에도 주 대법원은 찬반 양쪽으로부터 힌두사원의 지위에 대한 상충된 주장을 들었다. 정부 쪽 변호사인 라케시 드위베디는 “여성이 생물학적 특성을 이유로 삶의 어떤 행보에서도 배제될 수는 없다”며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만신교의 상징인 힌두 사원이 종교 극단주의, 여성 인권, 법치주의 등 다양한 가치의 시험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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