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5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과 이란, 독일, 유럽연합(EU) 대표들이 2015년 4월 스위스 로잔에서 이란 핵협정 내용을 타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또다시 이란과의 핵협정을 파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전 세계 군축·비확산 전문가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뉴욕 타임스> 등은 13일 미국의 군축·비확산 비영리 민간기구인 군축협회의 주도로 전문가 80여명이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핵협정 파기 움직임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고 보도했다. 성명에는 아베 노부야스 전 유엔 군축담당 사무차장, 한스 블릭스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토머스 컨트리맨 전 미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 차관대행 등 세계 각국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이란 핵협정이 2016년 1월부터 시행되면서 이란 핵프로그램이 제기하는 위험이 극적으로 줄어들었다”며 “전례 없는 사찰과 투명한 조처로 이란의 어떤 은밀한 핵 개발 시도도 즉각 포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핵 관련 제재를 재부과하기 위해 이란이 핵협정에 비협조적이라거나 준수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핑곗거리를 만들어내려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어 “이란이 핵협정을 위반했다는 분명한 증거 없이 트럼프 행정부가 핵협정을 파기하면 이란이 핵 활동 일부를 재개할 위험이 있다”며 “미국의 일방적 행동은 미국을 고립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북한 핵과 미사일 위기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아주 성공적이었던 이란 핵협정을 풀어헤치는 것은 매우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란과 주요 6개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은 2015년 7월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대가로 대이란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 합의한 바 있다. 이후 제정된 미국 국내법에 따라 미국 대통령은 90일마다 이란이 핵 합의를 잘 준수하고 있는지를 판단해 의회에 통보해야 하며, 의회는 이를 바탕으로 이란에 대한 제재 면제 연장을 결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부터 이란 핵 합의에 대해 “끔찍한 협상”이라며 파기를 공언해왔다. 하지만 지난 7월 국무부는 관련국들 및 전문가들의 반발이 일자 “이란이 핵협정을 준수하고 있지만 핵협정 정신은 이행하지 않는다”며 마지못해 제재 면제를 연장했다.
이에 따라, 그로부터 90일 뒤인 다음달 15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 파기를 재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잇따라 나왔다. 특히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지난 5일 워싱턴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 연설에서 “이란은 지난 1년 반 동안 수차례에 걸쳐 합의를 침해했다”고 비난하자, 전문가들은 이를 이란 핵협정을 깨기 위한 명분 쌓기로 의심해왔다. 원자력기구(IAEA)도 지난달 31일 보고서에서 이란이 핵 합의를 준수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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