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김정남 피습 당시 쿠알라룸푸르 공항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 유튜브 영상 갈무리
김정남 피살 사건의 여성 용의자들인 베트남 국적의 도안티흐엉(29)과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25)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독극물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말레이시아 정부가 부검 결과를 발표하지 않아 속단할 수는 없지만, 22일 말레이시아 경찰 발표를 보면 독극물은 호흡기를 통해 침투하는 종류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할릿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은 22일 쿠알라룸푸르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남성 용의자 4명이 두 명의 여성 용의자에게 액체를 전달했다. 여성들이 이 액체를 자신들의 손에 바른 뒤 망자의 얼굴에 발랐다. 그리고 나서 여성들은 화장실에 (손을) 씻으러 갔다”고 말했다. 바카르 경찰청장은 여성 용의자들이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손에 액체를 바른 뒤 양손을 몸에서 멀리 떼어냈고, 범행 뒤 곧바로 화장실에 가 손을 씻는 등 범행 전후 행동으로 미뤄볼 때, 이들이 김정남의 얼굴에 문지른 물질이 독극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여성들이 손에 독극물로 추정되는 물질을 손에 직접 바르고도 곧바로 씻어내면서 비교적 큰 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봐, 이 독극물은 피부에 직접 침투하는 물질이 아니라 호흡기를 통해 서서히 퍼져 치명상을 입히는 독극물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른 곳이 아닌 김정남의 얼굴에 독극물을 직접 바른 점, 공격을 당한 뒤에도 김정남이 한동안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부검을 한 김정남의 시신에서도 얼굴 등에 화상 등 상처 흔적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 등도 이를 뒷받침한다.
김정남은 피살 당일인 13일 쿠알라룸푸르공항에서 정체불명의 물질 공격을 받고서 불과 몇시간만에 숨졌지만, 공항에 있던 주변 사람들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독극물 정체에 대해서도 신경가스나 피마자씨에서 추출된 리신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용의자들이 휘발성이 강한 독극물을 사용했을 경우 부검 이후에도 김정남의 시신에서 문제의 독극물을 검출하는 게 쉽지 않을 듯 보인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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