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후원으로 전문가 회의 열려
동남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공동 역사교육을 논의하는 회의가 처음으로 열렸다. 한국은 중국, 일본과 공동역사서를 만든 경험을 살려 이들의 지원에 발벗고 나섰다.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 본부인 ‘유네스코 방콕’과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APCEIU)은 16~17일 한국연구재단 후원으로 ‘2013 유네스코 동남아시아 공동역사 발굴을 위한 국제 전문가 회의’를 타이 방콕에서 열었다. 유네스코는 그동안 중앙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 지역 국가들과 각각 공동 역사 교과서를 만들었지만, 동남아 지역에서 공동으로 역사 교육을 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엔 타이와 필리핀을 비롯한 8개 주요 동남아 국가의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한국 연구자들은 한·중·일 공동 교과서를 만든 경험을 참석자들과 나눴다. 발제를 맡은 신주백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공동연구를 할 때 갈등이 있는 주제는 우선 뒤로 미루고, 같은 생각을 가진 주제부터 시작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신 교수가 참여한 ‘한·중·일 3국 공동역사편찬위원회’는 2005년엔 청소년을 위한 <미래를 여는 역사-한중일이 함께 만든 동아시아 3개국의 근현대사>를, 2012년에는 일반인을 위한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출판했다.
이 자리에선 동남아 8개국이 처음으로 각국의 역사교육 현황을 종합하며 앞으로의 논의를 위한 기초를 닦았다. 필로메노 아귈라 ‘필리핀 아테네오 드 마닐라’ 대학 역사학과 교수는 “올 3월 베트남에서 교육부가 역사 교과를 고교 졸업 시험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하자, 한 고교에서 학생들이 집단으로 복도로 뛰어나와 역사 교과서를 찢어 운동장으로 던지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점점 역사에 관심이 적어지는 학생들에게 주변 동남아 국가들과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역사에 흥미를 가지게 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각국 전문가들은 연이은 토론에서 ‘동남아’의 개념을 어떻게 둬야 하는지,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든다면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지를 두고 논의를 벌였다. 수릿 핏수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전 사무총장은 기조 강연에서 “서로 역사를 공유하고 이해를 깊게 하면, 우리의 자녀들은 서로 더 튼튼한 다리를 놓고 우리 모두의 터전인 동남아에서 지속적인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남아 10개 국가들은 오는 2015년 유럽연합처럼 단일한 경제권을 이루는 ‘아세안경제공동체’(AEC)를 출범시킬 계획으로 이 지역에선 경제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유대를 강화할 끈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이 동남아 공동 역사교육 지원에 나선 것과 관련해, 정우탁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원장은 “동남아가 하나의 경제공동체가 된다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만큼 한국과 아세안국가 간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사회문화적 교류가 필요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수십년이 걸리겠지만 동북아까지 합친 동아시아 공동 교과서를 내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주백 교수는 “통일을 하기 위해선 미국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한미동맹에만 집착하고 있어 통일을 이루기가 어렵다.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교류는 한미동맹을 넘어서 다자간 협력 구도를 만들어 한반도 통일을 앞당기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콕/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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