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히말라야 계곡 마하데브강 둔치에 있는 바그마띠존다딩질라 마을 사람들의 지난 2009년 모습. 어른들과 함께 아이들도 하루종일 돌 깨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한다. 바그마띠존다딩질라/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진학·취업·연금·투표 불이익
전세계 1200만명 국적없어
UN “무국적 감소협약 동참”
전세계 1200만명 국적없어
UN “무국적 감소협약 동참”
네팔 어린이 200만명이 ‘국적없는 미아’가 될 위기에 처했다. 2006년 왕정을 폐지하고 설립한 네팔 특별의회가 마련한 최초의 ‘공화제 헌법안’에 ‘부모 모두가 네팔 시민권자일 경우에만 자녀에게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조항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헌법안이 그대로 확정되면, 어린이 200만명이 네팔 국적을 가질 수 없게 된다고 <로이터> 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새 헌법은 외국인 배우자가 네팔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조건으로 ‘네팔에서 15년 동안 합법적으로 거주해야 한다’는 엄격한 단서 조항을 달고 있어, 이 기간 동안 아이들은 국가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국적이 없으면 대학 진학이 불가능하고, 여권이나 운전면허도 받을 수 없다. 정부 연금도 받을 수 없을 뿐더러 투표권이나 공직 입후보권도 제한된다. 취업이 어려워지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네팔 인구(2800만명)의 절반가량이 몰려 사는 남부 테라이 지역에선 무국적자 문제가 큰 사회 문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인도 동북부 비하르 및 우타르 프라데시 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까닭에, 테라이에 사는 소수민족 마데시족은 이들 지역과 비슷한 언어와 복식, 문화 등을 공유하고 있다. 교역과 이주 노동을 통해 왕래가 빈번하게 이뤄져 인도 지역 사람들과 결혼하는 이들도 많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있는 유엔(UN)의 고위 관리는 “현안대로 법이 통과된다면, 외국인과 결혼한 부부의 자녀 100만 내지 200만명이 무국적자가 될 것”이라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들의 자손 또한 국적을 갖지 못하게 돼 대를 이어 무국적자가 양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네팔 정치인들은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의 큰 나라들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 네팔이 자국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선 엄격한 국적 부여 방안이 불가피하다고 옹호한다. 헌법 초안 마련에 참여한 프라디프 갸왈리 의원은 “인도, 중국인들이 네팔 국적을 획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런 조항을 마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 헌법이 통과되면 네팔은 전 세계에서 인근 부탄 왕국에 이어 부모 모두가 시민권 소지자라야 자녀들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하는 두번째 나라가 된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국적을 얻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1200만명에 달한다. 미얀마 무슬림 80여만명을 비롯해, 쿠웨이트에선 9만3000여명이 국적없이 사막에서 이동하며 생활하는 등 무국적자 문제는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동유럽, 중동 등에서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구는 25일부터 ‘유엔 무국적 감소 협약’(1961년) 동참을 촉구하는 캠페인에 돌입했다. 올해는 이 협약이 만들어진 지 50주년이 되는 해. ‘자국 영토에서 출생해 다른 방법으로는 국적을 가질 수 없는 자에게 자국 국적을 부여해야 한다’(1조1항)고 명시한 이 협약에 가입한 나라는 전세계 193개국 가운데 38개 국가에 불과하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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