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미시비츠 해군 대령
“고모님이 배에 오르시는 걸 보고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고모님이랑 친척들을 다시 보게 돼 너무너무 행복하다. 정말 오랜 세월이었다.”
킬링필드를 탈출한 지 37년 만에 캄보디아를 처음 방문한 미 구축함 머스틴호의 함장 마이클 미시비츠(43·사진) 해군 대령은 지난 3일 구축함을 찾아온 백발의 할머니가 된 고모(72)를 꽉 껴안고 기쁨의 눈물을 쏟아냈다.
미시비츠 대령의 원래 이름은 ‘바나크 켐’이다. 프놈펜 외곽의 농촌에서 태어난 그는 킬링필드의 학살이 본격화되기 2년 전인 1973년 양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내전의 전운이 감돌던 캄보디아를 떠났다. 고모가 식모로 일했던 미 대사관 직원이던 양어머니 메리나 리 미시비츠가 집에 와서 자주 놀던 귀여운 꼬마를 선뜻 입양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6살의 철없던 꼬마는 생이별에 복받쳐 울던 친어머니에게 “커서 큰 하얀집을 사주겠다”고 약속하고, 신세계의 꿈을 꾸고 고향을 떠났다. 일리노이주 래넉에서 자란 그는 주민 1500명 가운데 유일한 비백인이었다. 그는 고교 졸업 뒤 1985년 해군에 입대했고 해군사관학교를 거쳐 1992년 장교로 임관했다.
미시비츠 대령이 친부모의 소식을 들은 것은 미국에 온 지 16년이 지난 1989년이다. 타이 국경을 통해 탈출한 친어머니와 남동생은 1983년 미국으로 이주해 텍사스주에 정착했지만, 금방 만나지는 못했다. 텍사스대학의 한 동남아계 대학원생의 도움으로 그들은 그로부터도 6년이 지난 뒤에야 해후했다. 아버지와 여동생은 킬링필드에서 학살당했다는 소식도 그때서야 처음 전해들었다.
결혼해 네 아이의 아버지인 미시비츠 대령은 지금은 미국에 사는 친어머니와 친척들과 연락을 하고 지내지만, 해군 복무 때문에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어머니에게는 “큰 하얀집은 아니지만” 집도 사드렸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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