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길 오른 우즈베크인들 키르기스스탄 남부 오시에서 키르기스인들의 총격과 방화를 피해 도망친 수천명의 우즈베크인들이 12일 인근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길가에 앉아 피난처를 찾고 있다. 오시/AP 연합뉴스
키르기스 유혈 민족분쟁 악화
오시 시내 대부분 불에 타…100여명 사망 1천명 부상
무기탈취해 ‘인종청소’…러 주도 평화 유기군 파병 논의
오시 시내 대부분 불에 타…100여명 사망 1천명 부상
무기탈취해 ‘인종청소’…러 주도 평화 유기군 파병 논의
중앙아시아의 빈국 키르기스스탄 남부 오시에서 10일 밤 발생한 키르기스인들과 우즈베크인들의 민족분규가 4일째 계속되면서 13일 현재 사망자가 100명 이상, 부상자가 10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폭도들이 인구 25만명의 제2의 도시 오시를 사실상 점령한 가운데 군과 경찰은 상황 통제력을 상실했다.
키르기스 과도정부는 군과 경찰에 폭도 사살권을 부여했으나 살인과 약탈, 방화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오시는 시내 대부분이 불에 탔고 식료품 매장도 거의 약탈당했다. 한 키르기스인은 <에이피 텔레비전뉴스>(APTN) 인터뷰에서 “불타는 식당과 카페는 모두 우즈베크인 소유이며, 일부러 불을 질렀다”고 말했다.
<에이피>(AP) 통신은 오시 길거리에는 미처 피하지 못한 어린이와 부녀자들 주검이 널려 있다고 전했다. 현지 의사들은 우즈베크인들이 추가 피해가 무서워 병원에 오지 않기 때문에 사상자 규모가 공식집계보다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현지 관리는 우즈베크인 사망자가 500명이 넘는다고 말하는 등, 사태가 ‘인종청소’ 양상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우즈베크인들은 노인과 아녀자를 중심으로 이웃 나라인 우즈베키스탄으로 피란길에 올랐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13일까지 7만5000여명이 국경을 넘어왔고, 총상을 입은 사람도 다수라고 밝혔다.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의 혼란으로 어린이가 여러명 희생됐다.
폭력사태는 인근 잘랄라바드로 확대돼, 잘랄라바드 인근 마을에서 우즈베크인 30여명이 몰살당했다고 키르기스군 고위장교가 13일 밝혔다. 잘랄라바드에서는 사냥총과 쇠몽둥이를 든 수천명이 몰려다니며 우즈베크인들의 집과 상점을 닥치는 대로 부수고 군부대와 경찰서에서 장갑차와 총기를 탈취했다.
키르기스 정부는 두 도시가 속한 주 전체에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나 폭도들 기세에 눌려 방어에 급급한 처지다. 우즈베크인 청년들도 반격에 나서 잘랄라바드 인근에서 키르기스인 100여명을 인질로 붙잡았다고 한 목격자가 말했다. 양쪽은 우즈베크인들이 피신한 병원을 놓고 총격전도 벌였다.
오시 지역에서는 1990년에도 주택용지 분배를 둘러싸고 양쪽이 충돌해 230명이 숨지고 4000여명이 다친 적이 있다. 키르기스의 민족분규는 잠재되어 있다가 사회경제적 위기와 겹쳐 폭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태는 정확한 발생 원인 등이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지난 4월 바키예프 축출 이후 들어선 과도정부에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우즈베크인들이 몰려 사는 남부 오시는 지난 4월 축출된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전 대통령의 출신지이다. 로자 오툰바예바 과도정부 임시대통령은 바키예프 지지세력이 오는 27일 새 헌법의 국민투표와 10월 총선을 방해하려고 폭동을 부추겼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벨라루스에 망명중인 바키예프는 배후설을 부인하면서 “키르기스는 붕괴 직전”이라고 주장했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오툰바예바 대통령은 “오시 지역 상황은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며 러시아에 군사지원을 요청했으나, 러시아는 “국내 분쟁”이라는 이유로 독자적 개입을 거부하고 14일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서 평화유지군 파병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판 나토’인 집단안보조약기구는 2002년 결성됐다.
이번 사태는 키르기스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키르기스는 미국과 러시아가 군사기지를 운용하고 있으나, 과도정부는 러시아만이 “전략적 파트너”라며 미국에 대한 지원 요청 가능성을 일축했다. 러시아는 13일 키르기스 수도 비슈케크 부근의 자국군 공군기지 방어를 이유로 공수부대를 파견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키르기스스탄 개황
이번 사태는 키르기스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키르기스는 미국과 러시아가 군사기지를 운용하고 있으나, 과도정부는 러시아만이 “전략적 파트너”라며 미국에 대한 지원 요청 가능성을 일축했다. 러시아는 13일 키르기스 수도 비슈케크 부근의 자국군 공군기지 방어를 이유로 공수부대를 파견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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