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선관위 “카르자이 54% 득표”
지난달 20일 실시된 아프가니스탄 대선의 개표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하미드 카르자이 현 대통령이 54% 득표로 결선투표가 필요없는 과반수를 득표한 것으로 처음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유엔 선거불만위원회가 같은날 광범한 선거부정을 인정해 일부 재검표를 명령하면서 아프간 상황은 점점 꼬여들고 있다.
아프간 선관위는 8일, 91.6% 개표 결과 카르자이가 54.1%, 경쟁후보인 압둘라 압둘라 전 외무장관이 28.3%를 득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엔이 임명한 선거불만위원회는 “많은 투표소에서 선거 부정의 명백하고 확실한 증거들이 나왔다”며 일부 재개표를 명령했다. 아프간인 2명과 미국·캐나다·네덜란드인 등 모두 5명으로 구성된 선거불만위는 부정투표를 무효화하고 새 투표를 명령할 권한이 있으며, 최종 개표결과를 확정할 권한도 갖고 있다. 한 서방 외교관은 “명백한 부정표들이 배제됐다면 카르자이가 과반수를 넘어설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런 표가 70만표 이상이라고 말했다.
칼 아이켄베리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는 8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대선 개표 상황을 보고한 뒤 카르자이에게 “승리 선언을 해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경고를 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이는 카르자이 진영이 선거부정에 대한 조사를 방해할 수 있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미 행정부는 선거결과를 전면 부정할 수 있는 ‘완전한 부정선거’라고 부르는 것을 자제하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선거불만위의 조사가 적어도 수 주 걸릴 것이고, 아프간의 기후상황에서 10월 이후 재선거나 결선투표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고려도 깔려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아프간 정부의 협력 속에 새로운 아프간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오바마 미 행정부의 희망인데, 어떤 식으로든 대선 승리가 유력한 카르자이의 정통성을 부정할 경우 후일 카르자이와 협력이 없는 새 아프간 전략의 실패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카르자이와 압둘라의 타협을 통한 새 정부 구성을 종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타협적 안이 제시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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