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즈 샤리프(60) 전 총리
[뉴스 인물] 반정부시위로 ‘온건파’ 재부상
“이것은 혁명의 전주곡이다.”
최근 파키스탄 법조계와 야권의 반정부시위에서 최대의 정치적 승리를 거둔 나와즈 샤리프(60·사진) 전 총리는 이번 시위를 이렇게 묘사했다. 쿠데타로 쫓겨난 비참한 망명 정객이 10년 만에 일약 정계 최대 거물로 떠오른 감회이기도 하다.
파키스탄에서 가장 부유한 펀자브주의 주도 라호르 출신인 샤리프는 이곳을 주요 지지기반 삼아 1980년대 정계에 입문했으며, 1990년대엔 두 차례 총리에 올랐다. 1999년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대통령의 쿠데타로 총리직을 잃은 뒤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가 2007년 귀국했다.
사실 미국 등 서방은 샤리프를 탐탁치 않아 했다. 집권 시절 핵실험을 강행한 인물인데다, 이웃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지지한 친이슬람주의 세력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핵실험 당시 주파키스탄 미국 대사였던 토마스 사이먼스는 2007년 <에이피>(AP) 통신 인터뷰에서 “샤리프는 핵실험을 원치 않았지만, 실험을 하지 않으면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할 판이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의 앙숙인 인도가 핵실험을 실시한 직후여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를 알카에다나 탈레반 같은 과격 이슬람주의자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평한다. 오히려 이 때문에 오늘날 샤리프는 아프간 대테러전쟁을 끝내려는 미국에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7일 전했다. 가장 골칫거리인 아프간-파키스탄 접경 지역의 이슬람주의자들과도 교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권 아시프 자르다리 대통령이 이번 반정부시위로 큰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미국이 샤리프를 ‘새로운 카드’로 고려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샤리프는 2007년 귀국과 함께 무샤라프 축출을 내걸고 정권의 최대 약점이었던 ‘사법부 복원’에 정치 생명의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샤리프를 ‘민주 투사’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도 1997년 총리 시절 자신과 성향이 맞지 않는 대법원장을 해임한 적이 있었다. 샤리프는 14억달러의 재산을 보유한 파키스탄 최대의 재력가이며, 많은 부패 혐의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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