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지르 부토(사진)
사망원인 논란속 테러·구제금융 등 국정 불안
지난해 12월27일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총선 지원 유세 도중 목숨을 잃었다. 파키스탄의 정치 명망가 부토 가문을 덮친 두 번째 비극이었다. 그의 죽음 뒤 1년, 부토의 남편은 대통령으로 올랐으나, 파키스탄은 더 심각한 정치·경제 등 총체적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부토 가문의 묘역이 있는 남부 신드주 라르카나에선 추모객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라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정부가 국가공휴일로 선포한 27일 추모객이 수십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추모 행사는 부토의 남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이 손수 주관할 계획이다. 당국은 테러 공격 가능성에 대비해 묘역 주변에 7천여명 규모의 치안 병력을 배치했다. 부토의 초상을 담은 10루피짜리 동전이 한정 발행되고, 수도 이슬라마바드 공항은 지난 6월 부토 공항으로 이름을 바꿨다.
부토의 사망원인은 아직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사건 직후 파키스탄 경찰은 차량 지붕에 머리를 부딪힌 것으로 결론지었고, ‘외부기관’ 자격으로 별도 수사에 나섰던 영국 런던경시청도 같은 결론을 냈다. 부토가 이끌던 파키스탄인민당(PPP)은 ‘정부의 경호 소홀 속에 피격됐다’고 주장하며 유엔 차원의 수사를 촉구했지만 눈에 띄는 진전은 없다.
부토 사망으로 한 차례 연기했다가 지난 2월 치른 선거에서, 인민당은 파키스탄무슬림리그-나와즈(PML-N)와 손을 잡고 ‘반무샤라프’를 내세워 승리를 거뒀다. 두 당은 연립정부를 꾸렸고 인민당은 총리를 배출했다. 이들에게 압박당한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대통령은 지난 8월 결국 사임했다. 부토의 남편 자르다리가 의회에서 최다 표를 얻어 대통령에 오르면서, 부토가 남긴 ‘민주주의는 최고의 복수’란 명제가 실현된 듯했다.
그러나 올해 파키스탄은 국내외 위기의 최대 희생자로 지목되고 있다. 탈레반 세력이 근거지로 삼은 아프가니스탄 국경지역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이슬라마바드 메리엇 호텔 폭발 사건 등 50차례 이상의 ‘자살 폭탄’ 공격이 일어났다. 인도 뭄바이 테러 공격의 배후로 지목되면서는 인도-파키스탄 두 핵보유국의 관계가 ‘잊혀진 화약고’란 사실을 재확인했다. 기름값·곡물값이 급등하자 대표적인 식량위기국가로 꼽혔고, 금융위기가 세계를 휩쓸자 곧장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지원을 받아야 했다.
부토 지지 세력이 가장 즐겨 외치던 구호는 ‘차론수본키잔지르’(파키스탄 4개주를 묶는 끈)였다. 종교·민족 등의 문제가 불거지기 쉬운 파키스탄의 정치 현실에서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준 그를 추앙한 말이다. 그러나 부토는 유언을 통해 약관의 아들 빌라왈을 당 대표 후계자로 지목하는 비민주적 행태를 보였고, 결국 남편 자르다리가 공동대표, 나아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파키스탄의 뒷걸음질치는 민주주의와 국가적 위기는 부토 사후 한층 증폭되고 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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