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자살폭탄 테러
파키스탄의 수도 한복판에서 일어난 20일 메리엇 호텔 자폭테러는 지난해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 암살 이후 최악의 테러사건이다.
이번 공격은 막 출범한 친미 성향의 자르다리 정부에 이슬람주의자들이 보낸 경고이자, 파키스탄의 어느 곳도 테러에서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폭발은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신임 대통령이 호텔에서 겨우 1㎞ 남짓 떨어진 의회에서 당선 이후 첫 양원 합동회의에 참석한 지 몇 시간 만에 발생했다. 따라서 이날 테러공격은 그 대담성과 규모뿐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와 파장 때문에 충격을 더하고 있다.
현지 일간 <더뉴스>는 21일 “이번 테러공격은 사실상 파키스탄의 정계와 군부 지도자들이 모여 있던 의회를 겨냥했으나 철통같은 보안경비 때문에 틀어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이날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이번 폭탄공격은 이슬람 무장저항세력을 뿌리뽑으려는 파키스탄 정부와 미국의 시도가 전례없는 유혈사태에 맞닥뜨릴 것이라는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경고”라고 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일요판 <업저버>도 이슬람주의자 입장에서 “이날 공격은 ‘타락한 서방세계의 소굴’인 파키스탄 핵심부와 엘리트 지배권력에 대한 일격”이라고 풀이했다.
이제 막 집권한 자르다리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총선 유세 중 암살당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후광으로 정치에 입문하고 막강한 권력까지 거머쥐었다. 그러나 부패와 독직 혐의로 10년에 걸쳐 옥살이를 했고, 각종 이권에 개입해 커미션을 챙기는 바람에 ‘미스터 10%’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추문으로 얼룩진 인물이다. 최근 연정 붕괴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다 자르다리 자신도 악화된 민심과 낮은 지지율로 리더십이 취약한 상황이다.
이번 자폭 테러가 최근 균열이 생기던 파키스탄과 미국의 대테러전 공조에 어떤 구실을 할지도 주목된다.
자르다리 대통령은 테러공격 직후 대국민 텔레비전 연설에서 “테러리즘은 파키스탄의 암이며, 우리는 이 암덩어리를 파키스탄에서 제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판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도 20일 신속하게 성명을 내고 “미국은 도전에 직면한 파키스탄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와 국민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자르다리는 최근 아프간 주둔 미군의 파키스탄 월경 문제에 대해 강력히 경고해 두 나라 사이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자르다리 대통령은 20일 의회 연설에서 “어떠한 외국 정부에도 테러 분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파키스탄 영토를 사용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주에는 파키스탄군 당국이 “미군이 파키스탄 영내에서 공습이나 작전을 계속할 경우 발포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샤 마무드 쿠레시 외무장관은 “자르다리와 부시 대통령이 이번주에 미국 뉴욕의 유엔 총회 뒤 만나 반테러 전략에 대해 논의하며, 최근 파키스탄 영토 내 아프간 접경지역에서의 미군 공습 문제도 다루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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