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중 TV쇼 진행…겸직금지 어겨 위헌” 판결
타이 헌법재판소는 9일 오후(현지시각) 사막 순타라웻 총리가 재임 중 텔레비전 요리쇼를 진행한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헌재의 이날 위헌 판결로 사막 총리가 물러나고 과도 내각이 꾸려지게 됐다고 현지 일간 <네이션> 등이 보도했다.
타이 헌재는 “사막 총리가 요리쇼를 진행하며 받은 돈이 교통비뿐이라며 제출한 증거가 방송제작사 쪽이 제출한 지급명세서와 일치하지 않는다”며 만장일치로 위헌 판결을 내리고 그의 총리직을 박탈했다. 또 헌재는 새 내각이 구성될 때까지 현 내각의 일부 각료들이 과도 내각을 맡으라고 덧붙였다.
사막 총리는 2000년부터 페이스미디어가 제작하는 ‘맛보기, 투덜대기’ 등 두 텔레비전 요리쇼를 진행해 왔다. 지난 2월 총리 취임 뒤에도 방송을 계속하자 ‘공직자 겸직 금지’ 위배 논란이 일어 두 달 만에 방송에서 하차했다. 타이 상원의원들과 선거관리위는 지난 5월 ‘선출직 공무원은 일반 회사나 이익단체에 협력해 수익을 분배하거나 종업원으로 고용돼서는 안 된다’는 헌법(267조)을 위반했다며 사막 총리를 반부패위원회에 제소했다. 이번 위헌 판결로 타이 정국은 또 한 차례 요동치고 있다.
■ 위헌 판결 혼란 잠재울까? 애초 현지 언론들은 위헌 판결이 나올 경우 정국 경색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내다봤다. 반정부 시위대의 가장 큰 요구사항이 사막 총리의 사임이었기 때문이다. <방콕 포스트> 등 현지 언론들은 집권 연정에 참여하는 찻타이당의 대표 반한 실빠아르차 전 총리가 사막 총리 사퇴 이후 과도내각을 이끌 총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들을 내놨다. 하지만 집권 피플파워당(PPP)은 이날 과도 내각을 통한 정국 안정 구상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날 헌재 위헌 판결 뒤 피플파워당이 긴급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사막 총리를 다시 총리 후보로 세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헌재의 판결이 사막 총리의 정치활동 금지를 못박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피플파워당의 이런 결정이 계속되는 위기 상황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에이피>(AP) 통신은 분석했다. 민주주의민중연대(PAD)도 방콕의 정부청사 점거 농성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 군과 국왕 침묵 깰까? 결국 침묵을 지키고 있는 군부와 국왕만이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사막 총리의 비상사태 선언으로 치안유지권을 장악한 군부는 ‘쿠데타’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게 현지 언론의 평가다. 특히 사막 총리가 오는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 참석차 출국해, 이를 틈타 군부가 행동에 나설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장 큰 변수는 국왕이다. 타이 국왕은 그동안 쿠데타로 얼룩진 타이 정국에서 정통성을 부여하는 마지막 중재자로 기능해왔다. 이날 <로이터> 통신은 현재와 같은 대치 국면이 계속돼 추가적인 사망·부상자가 발생할 경우,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개입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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