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의 현정권이 부패한 탁신 전 총리의 ‘꼭두각시’ 정권이라며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이에 맞서는 친정부 시위마저 ‘점화’되고 있다. 타이 정국이 극한 대립으로 치달으면서, 정치 위기마다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온 국왕과 군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반정부 대 친정부 대립 민주주의민중연대(PAD)가 이끄는 반정부 시위대 1만여명이 31일 엿새째 수도 방콕의 정부청사를 점거하고 사막 순타라웻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고 현지 일간 <네이션>이 보도했다. 지난 5월 방콕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탁신 치나왓 전 총리가 지난 11일 영국으로 도피해 망명을 신청한 이후, 지방으로까지 확산돼 휴양지 푸껫과 끄라비 등의 공항이 이틀 동안 폐쇄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기관사를 포함한 국영철도 노조원 255명도 동조파업을 벌이면서 북부 12개, 북동부 27개, 남부 39개 정기 노선이 제대로 운행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민중동맹의 손티 림통쿨 공동회장은 “사막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반정부 시위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사막 총리는 30일 “나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총리가 됐고 법이 나를 허락하지 않을 때만 떠나겠다”며 총리직을 고수할 뜻을 밝혔다. 여기에 친정부 시위대까지 가세하면서 사태는 점차 ‘대결구도’로 흐르고 있다. 이날 수도 방콕의 사남 루앙 광장에선 수천명이 참가한 친정부 집회가 열려 “민주주의민중연대가 ‘무정부적 방법’으로 사막 정권을 전복하고자 하는 것을 막자”고 촉구했다. 이들은 현 정권이 퇴진할 경우, 민주주의민중연대가 어떤 정부를 새로 세우더라도 거부하겠다고 다짐했다.
■ 국왕과 군부에 쏠린 눈 사태가 대결국면으로 치달으면서 관심은 국왕과 군부에게로 쏠리고 있다. 국왕은 실질적인 정치적 권한은 없지만 정치적 위기 상황마다 개입해왔고, 군부 역시 1932년 이후 20차례나 쿠데타를 일으키며 여전히 막강한 힘을 휘두르고 있다. 실제로 반정부 시위에 끈질기게 버티던 탁신 전 총리는 2006년 4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을 만난 뒤 사임 뜻을 밝혔고, 그해 9월 군부 쿠데타로 결국 물러났다.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사막 총리는 급히 푸미폰 국왕과 군부 설득에 나섰다. 특히 그는 국왕을 만나기 위해 29일과 31일 두 차례나 클라이캉원궁을 찾았다. 하지만 첫번째 만남은 ‘불발’에 그쳤고, 두번째 만남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밝히지 않아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29일 군 수뇌부와의 비상회의에선 급한 불은 끈 듯 보인다. 사막 총리와 만난 뒤, 아누퐁 파오찐다 육군 참모총장은 “군의 개입은 정부와 시위대 사이의 갈등 해소책이 될 수 없다”며 “군이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긴 하나, 사막 총리의 명령 없이는 사태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네이션>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날 군 수뇌부 회동에서 아누퐁 참모총장이 사막 총리에게 총리직 사퇴를 건의했다고 보도하는 등, 군 내부의 커져가는 불만 기류를 전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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