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 프란
1970년대 내전 취재 크메르루주 정권 참상 알려
캄보디아 내전을 다룬 영화 <킬링필드>의 실제 주인공 디트 프란(66·사진)이 30일 숨졌다.
영화에서처럼 디트와 통역-기자 관계로 만나 고락을 함께했던 시드니 쉔버그 기자는 디트가 췌장암으로 3개월째 투병하다 이날 세상을 떠났다고 <뉴욕타임스>에 전했다. 쉔버그는 “프란은 진정한 기자였고 진실을 찾기 위해 싸운 투사였다”고 회고했다.
영어 통역관이던 디트는 1973년 캄보디아 내전을 취재하러 온 쉔버그를 만나 크메르루주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캄보디아를 탈출하던 길에 보았던, 학살 희생자들의 계곡을 묘사하는 ‘킬링필드’란 말은 디트가 직접 만든 것이기도 하다.
디트와 쉔버그는 참상의 현장에서 통역과 기자로 만났지만, 평생 서로를 ‘형제’로 부르며 인연을 이어갔다. 캄보디아 인구의 3분의 1 가량인 200만명을 학살시킨 크메르루주가 프놈펜을 점령할 당시 디트의 가족을 탈출시킨 사람이 쉔버그였다. 당시 탈출에 실패했던 디트는 안경이나 손목시계만 차도 ‘서구의 앞잡이’로 몰아 학살하던 정권 치하에서 택시기사로 신분을 숨겨 간신히 살아남았다. 쌀 한줌으로 하루를 나고, 쥐까지 잡아먹으며 4년 반의 고된 생활을 버틴 디트는 79년 베트남의 침공을 틈타 캄보디아를 탈출할 수 있었다. 65㎞를 걸어 타이 국경의 난민촌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기다리던 쉔버그와 다시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갔다.
미국에 정착한 뒤 디트는 <뉴욕타임스>의 사진기자로 일하는 한편,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고국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쉔버그는 자신과 디트가 겪은 이야기를 <디트 프란의 생과 사>라는 책으로 펴내 80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들의 얘기는 1984년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킬링필드>로 다시 만들어졌고, 아카데미는 이 이야기에 3개의 상을 안겼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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