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깃발 개발독재 족벌부패 경제‘발목’
98년 피플파워까지 32년 장기집권
잔혹통치 100만 사망·200만 투옥
32년 동안 철권통치를 휘두른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27일 87살로 숨졌다.
<에이피>(AP) 통신은 수도 자카르타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수하르토가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26일 오후 1시10분(현지시각)께 숨졌다고 보도했다. 그는 지난 4일부터 심장·콩팥·폐 등에 문제가 생겨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1921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수하르토는 네덜란드 식민정부 육군학교와 일본군 휘하의 인도네시아 육군에서 승승장구하다 1965년 9월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를 빌미로 집권했다. 이른바 ‘G30S’라는 공산주의 반란을 진압했다고 주장했으나 진상은 분명치 않다. 이후 수하르토는 공산주의자·용공분자 100만여명을 색출해 숙청했다. 이듬해 수카르노 당시 대통령은 수하르토에게 권력을 이양했고, 수하르토는 67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실용주의’를 내세운 수하르토는 경제개발에 집중하며 장기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석유로 벌어들인 돈을 산업발전에 투자했고, 수출 주도의 경제성장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정치 자유를 부르짖는 시민·학생들의 외침이 90년대 초부터 커졌고, 무슬림 지식인들도 가세했다. 97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결국 인도네시아 경제를 성장가도에서 끌어내리며 수하르토 체제에도 종말을 고했다. 경제 실정에 대한 비난이 전국으로 확대된 소요 끝에 98년 5월21일 수하르토는 대통령직을 내놨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2004년 수하르토를 세계 최악의 부패 지도자로 꼽고, 재임기간에 그가 350억달러를 챙긴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2000년 부패 혐의로 기소됐으나, 검찰은 건강을 이유로 2006년 5월 공소를 취하했고, 지난 12일에는 횡령한 자선단체기금 등 14억달러의 반환을 위한 민사소송에서도 그의 가족과 ‘법정 밖 화해’에 이르렀다.
그의 부인은 규모가 큰 국내기업 간 거래에 개입해 무조건 10%의 수수료를 받아 ‘10% 부인’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수하르토 퇴임 뒤 가족들은 갖고 있던 호텔·쇼핑센터·회사 등을 몰래 팔았지만, 부정축재한 재산은 한푼도 국고로 귀속되지 않았다.
시예드 하미드 알바르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은 수하르토 사망에 애도를 표하며 “그는 인도네시아의 경제뿐 아니라 아세안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말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다른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사람이었기에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다”, “그가 이룬 업적에 감사한다고 해서 우리가 다치진 않는다”고 그를 두둔하기도 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도 “부패는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재임기간에 인도네시아는 진정한 성장을 일궜다”고 평했다.
하지만 그의 경제개발은 ‘100만명 사망, 200만명 투옥’이라는 철권통치 아래에서 이뤄졌고,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를 낳아 지금의 정정 불안의 씨앗이 되고 있다는 점에 많은 이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김외현 서수민 기자 oscar@hani.co.kr
잔혹통치 100만 사망·200만 투옥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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