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신 친나왓 전 총리
탁신 지지 피플파워당 농민·빈민 ‘몰표’로 과반 육박
군부·중산층은 “부패한 탁신 포퓰리즘” 거센 비난
군부·중산층은 “부패한 탁신 포퓰리즘” 거센 비난
타이의 정국이 오리무중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23일 총선에서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지지 성향의 피플파워당(PPP)이 절반에 육박하는 의석을 확보했는데도, 정부 구성 전망은 안개에 싸여 있다. 이는 농민·도시빈민층과 도시 중상류층 사이의 계층 대립이 근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체 480석 가운데 233석(48.5%)을 확보해 간발의 차로 과반을 놓친 피플파워당은 연립정권 구성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플파워당 대변인은 26일 “소규모 정당들과 손잡고 19석을 추가해 현재 254석(52.9%)을 확보했다”고 말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사막 순타라웻 총재는 1월4일 기자회견에서 새 정부 구성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플파워당 정권이 출범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공식적으로 ‘연립’을 확인한 정당은 아직 없다. 활발한 물밑대화가 오갈 뿐이다. 한달 동안 선거법 위반 여부를 심사할 선거관리위원회의 일정도 관건이다. 한 선관위원은 “적어도 24명이 당선무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 군부가 과연 약속을 지킬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외신들은 타이 정치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군부가 몰아낸 탁신 정권을 타이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다시 불러들인 셈이기 때문이다. 이는 군부 쿠데타에 염증을 느낀 타이 사회의 반감이 표면화한 것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타이는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뒤 지금까지 18차례의 쿠데타를 겪었다. 정치가 흔들린다고 판단할 때마다 군부는 총칼을 들이밀었다. 국왕이 이런 쿠데타를 묵인해 와, 명분만 있다면 군부의 정치 개입은 어렵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극에 달한 농민·도시빈민층과 중산층 사이의 반목이 선거를 통해 물 위로 떠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 탁신 세력의 승리는 농민·도시빈민층이 표를 몰아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은 탁신 정부의 ‘부패’란 딱지를 눈감아 줬다. 탁신은 집권 6년 동안 사실상 무상의료와 저금리 대출 등으로 농민층과 도시빈민층을 중심으로 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공격적인 외자 유치와 농촌경제로의 현금 유입으로 경제성장도 이룩했다.
그러나 중산층·지식인 등 여론 주도 계층은 탁신의 통치를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대중주의)이라고 비난했다. 언론탄압과 정적 협박, 권력 견제 무마 시도 등 비민주적 노선은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2700여명이 숨진 남부의 불교-이슬람교 갈등을 악화시켰다는 비난도 나왔다. 각료들의 부패 추문도 잇따랐다. 2006년 초 탁신 일가의 통신회사 지분 매각 및 탈세 소식에 전국적 소요가 일었고, 결국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지난 15개월 동안 탁신은 사실상 망명생활을 했으며, 그의 타이락타이당은 해체됐다.
계층 간의 틈새를 파고든 탁신 세력의 집권은 전통적 여론주도층을 무력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한 정치분석가는 <방콕포스트> 기고문에서 “피플파워당 연정의 집권은 전통적인 정치체제에 대한 정면공격”이라며 “소수 여론주도층에 대한 다수 유권자들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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