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중국 개입 피하려 ‘입적 뒤 지명’ 전통 거슬러
‘활불’(살아있는 부처)로 여겨지는 지도자가 입적(사망)한 뒤, 그의 ‘환생자’로 인정되는 어린이를 후계자로 삼는 티베트불교(라마교)의 전통에 변화가 예상된다. 1959년부터 거의 50년 동안 망명생활 중인 티베트불교 최고지도자 달라이라마 14세(72·사진)가 “살아 있는 동안 후계자를 선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을 방문 중인 달라이라마는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나는 20년 전부터 후계자 문제에 대해 생각해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티베트 민중이 달라이라마 제도가 계속되기를 바란다면”이란 전제를 달면서, “고승들이 민주적으로 선출하는 방식(교황 선출 방식)이나, 내가 (생전에 직접) 후계자를 지명하는 방법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생을 통해 달라이라마(‘가장 큰 스승’의 뜻)를 계승하는 전통은 티베트, 네팔, 부탄, 몽골, 시베리아 등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티베트불교의 핵심적 특징이다. 달라이라마가 이를 거스르면서까지 후계 선출을 서두르는 것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중국 정부가 계승 절차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티베트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견제해 온 중국은 후계 선정 과정에 개입해 티베트불교 지도부를 ‘친중파’로 구성하려는 의도를 공공연히 비쳐왔다. 중국 정부는 지난 9월부터 “모든 티베트불교 지도부 선임은 정부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시행령을 내렸다고 <신화사> 통신이 전했다.
지난 1989년 티베트불교 2인자 판첸라마 10세의 입적 당시엔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달라이라마와 망명 지도부는 게둔 초에키 니마(17)를 환생자로 지명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지명한 판첸라마 11세(16)를 즉위시켰다. 그 뒤 니마와 그 가족들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로,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다는 설도 있다. 중국 정부가 이들을 “잘 보호하고 있다”고 밝힌 적도 있었다.
달라이라마가 자신하고 있는 것은 티베트 민중의 지지다. 그는 “내가 죽고 나서 중국이 선정한 후계자를 티베트 사람들은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달라이라마는 ‘티베트 자치’를 요구하며 비폭력 투쟁을 벌여왔다. 국제사회로부터 업적을 인정받아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나면 젊은 승려들이나 티베트 청년회 등 급진단체들이 무장투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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