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대법원, 쿠데타로 쫓겨난 전 총리 귀국 판결
정국혼란 가중…무샤라프 돕는 미국도 더불어 위기감
정국혼란 가중…무샤라프 돕는 미국도 더불어 위기감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추방당한 뒤 7년 동안 망명생활을 해온 나와즈 샤리프 전 파키스탄 총리에 귀국길이 열렸다. 샤리프 전 총리가 귀국하게 되면 파키스탄 정국이 또다시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쫓겨난 총리의 귀환=파키스탄 대법원은 23일 “파키스탄 시민인 샤리프 전 총리에겐 귀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결정했다고 <비비시> 등 외신들이 전했다. 샤리프는 이날 런던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되도록 빨리 귀국하겠다”며 자신의 귀국이 “무샤라프 종말의 서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성명을 내어 “우리는 헌법과 법률을 준수한다. 대법원 판결은 바로 효력을 가진다”며 그의 귀국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샤리프는 1999년 무샤라프의 쿠데타로 총리에서 쫓겨났으며, 부패 등의 이유로 종신형을 받았으나 이듬해 10년간 국외 추방을 조건으로 풀려났다.
샤리프의 귀국은 이런 악연 말고도 지지 기반이 일정 정도 겹친다는 점에서 무샤라프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샤리프는 종교계를 포함한 보수 세력을 정치 기반으로 삼고 있다. 친미 성향의 무샤라프도 친탈레반 성향의 이슬람주의 세력이 강한 아프간 접경지역에 사실상 자치를 허용하는 등 국내 이슬람 세력을 껴안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 때문에 샤리프가 귀국해 무샤라프와 대립각을 세우면 지지층이 갈라질 수 있다. 게다가 무샤라프는 지난달 랄 마스지드(붉은 사원) 이슬람학교의 유혈 진압과 최근 접경지역 공세로 이슬람 세력의 지지를 상당 부분 잃은 상황이다.
대법원은 반 무샤라프 세력의 구심점 구실을 하고 있다. 대법원은 샤리프 귀국 결정에 앞서 지난달 무샤라프가 해임한 이프티카르 차우드리 대법원장의 복직 판결을 내렸다. 돌아온 차우드리는 정보기관의 민간인 납치와 정치인 추방 등을 연일 질타하며 무샤라프와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무샤라프와 미국의 불안= 무샤라프는 이달 초 비상사태 선포를 고려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 핵심 각료들과 숙의한 끝에 비상사태 선포 계획은 철회했다.
무샤라프 못지않게 위기를 느끼는 것은 조지 부시 미 행정부다. 파키스탄을 대테러 전쟁의 ‘핵심 전초기지’로 삼고 있는 미국으로선 이슬람주의 세력의 선봉장인 샤리프의 귀국이 달갑지 않다. 미 국무부 서남아시아 지역 업무 담당 출신인 대니얼 마키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적어도 샤리프 전 총리가 미국의 좋은 친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24일 보도했다.
그동안 부시 행정부는 친미 성향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와 무샤라프 사이의 권력 분점 협의를 주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토 쪽에서 제시한 최고사령관직 사퇴 요구를 무샤라프가 받아들이지 않아 큰 진전이 없는 상태다. 미국과 무샤라프의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무샤라프의 임기 연장을 결정할 선거는 올가을로 성큼 다가왔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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