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중심 비상내각 ‘부패척결 빈민구제’에 국민 호응
지난 9일 방글라데시 신문들은 1만9745타카(약 26만원)의 빚을 갚지 못해 경찰에 끌려가는 80대 노인의 사진을 실었다. 이 사진에서 깡마른 백발 노인 모노란잔 로이(85)는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채 경찰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는 1988년 소를 사려고 은행에서 빌렸던 돈을 갚지 못해, 8일 수감됐다.
이 노인은 9일 이 기사를 읽은 한 ‘독지가’가 빚을 대신 갚아 곧 풀려났다. 방글라데시군 최고사령관 모엔 우 아메드 장군이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었던 것이다. 1월부터 계속된 비상사태 속에서 군부의 수장이 고통 받는 빈민에게 내민 따뜻한 손길이었다. <비비시> 방송은 11일 “방글라데시의 임시내각과 군부가 적극적인 반부패운동을 진행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방글라데시의 라주딘 아메드 대통령은 지난 1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예정됐던 선거를 취소했다. 당시 불공정 선거에 대해 야당이 불만을 제기하고, 여야의 격한 대립으로 유혈사태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선 임시내각은 군부의 강력한 지지 위에서 과감한 반부패운동에 나섰다. ‘대립의 주범’으로 정적 살인, 뇌물 수수 등의 혐의를 받던 여야 당수의 자격을 정지시키고, ‘후계자’로 불리며 직권을 남용했던 한 총재의 아들 등 고위 정치인 60여명과 경제인·공무원 100여명을 구속·수사했다. 방글라데시 반부패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하산 마시후드 초우더리 중장은 “‘물고기는 머리부터 썩는다’는 말이 있다”며 “정치인 등 고위직에 초점을 맞춰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방글라데시가 세계적으로 가장 정당 대립이 심한 나라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정책 차이는 크지 않지만, 민족당(BNP)의 칼레다 지아 총재와 19개당 연합인 아와미리그의 셰이크 하시나 총재가 1991년부터 총리를 번갈아 맡아오면서 두 여인 사이의 대립구도가 고착화됐고, 두 사람을 중심으로 정치권은 심하게 부패했다. 임시내각이 약속한대로 2008년말 총선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정권’이라는 방글라데시의 오랜 오명을 벗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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