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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시리아내전 6년의 비극…12살 소년 “전쟁 말고 아는게 없어요”

등록 2017-03-13 21:12수정 2017-03-13 21:27

31만명 숨지고 1120만명이 난민
630만은 국내 실향, 490만 국외로
어린이들 희생·고통·스트레스 극심
“그래도 아이들 꿈 잃지 않았다”
유엔 “올해 80억달러 시급” 호소
지난 1월, 내전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 북부 알레포 인근의 한 마을에서 한 소년이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가 나눠준 학용품과 심리치료 교재를 들고 무너진 건물 잔해가 널부러진 거리를 걷고 있다. 알레포/유니세프 제공, AP 연합뉴스
지난 1월, 내전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 북부 알레포 인근의 한 마을에서 한 소년이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가 나눠준 학용품과 심리치료 교재를 들고 무너진 건물 잔해가 널부러진 거리를 걷고 있다. 알레포/유니세프 제공, AP 연합뉴스
“저는 비행기가 싫어요. 포격과 폭탄 지뢰가 싫어요. 어떤 것들은 땅에 묻혀 있어서 걷다가 폭발해요. 그럼 죽어요.…저는 피가 무서워요. 시체를 보는 게 무서워요.” 시리아의 이슬람국가(IS) 점령지역에서 탈출한 아메드(9)는 말을 심하게 더듬으며 불면증을 앓는다.

“악몽을 꾸곤 해요. 제가 자고 있으면, 괴물이 저한테 찾아와 ‘왜 너는 자고 있니? 넌 잘 수 없어’라고 말을 걸어요. 그리고는 그 괴물이 입을 열어요.… 괴물에게 잡아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저는 눈을 떠요. 이렇게 잠에서 깨면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어요.” 8살 소년 모하메드는 공습으로 아버지를 잃은 뒤 야뇨증이 생겼다. ▶관련기사=시리아 내전 6년, 어린이 난민만 200만명

시리아 내전이 이번 주로 6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포화와 참상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 민간구호기구인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주 발표한 <보이지 않는 상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시리아 어린이들의 상당수는 언어장애, 야뇨증, 불안 등 ‘독성 스트레스’ 증상에 시달린다. 어른 응답자 84%와 어린이 대다수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격과 포격을 심리적 스트레스 유발의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이번 보고서는 내전의 격전지들인 알레포, 다마스쿠스, 홈즈를 비롯해 14개 주에서 10대 청소년 154명과 부모 및 보호자 159명을 설문조사하고, 5~17살 125명과 심리 전문가 등 20명을 인터뷰한 결과다.

전쟁이 지속되면서 어린이들의 불안 장애는 더욱 심해졌다. 성인 응답자의 49%는 “아이들이 항상 또는 수시로 극심한 슬픔을 느끼고 있다”고 보고했다. 또 어린이·청소년 응답자의 40%는 “집 옆이라도 밖에서 놀 때 안전하다고 느낀 적이 거의 또는 한 번도 없다”고 답했으며, 60%는 “부모님이 없으면 불안감”을 느꼈다. 아이들은 종종 두통과 흉통, 호흡곤란 을 호소하기도 했다.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에서 어린이들을 인터뷰한 모하메드는 “아이들이 창문이 쾅 닫히고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에도 스트레스 반응을 나타냈고, 많은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오줌을 가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동부 외곽의 한 마을에 있는 한 초등학교의 교실이 공습과 포격으로 부서진 채 방치돼 있다. 다마스쿠스/유니세프 제공, AP 연합뉴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동부 외곽의 한 마을에 있는 한 초등학교의 교실이 공습과 포격으로 부서진 채 방치돼 있다. 다마스쿠스/유니세프 제공, AP 연합뉴스
아이들이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린이 4명 중 1 명 꼴로 “무섭고 슬플 때 말할 사람이 거의 또는 전혀 없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 절반이 경제적 궁핍과 스트레스로 가정폭력이 늘었다고 했다. 성인 18%는 홀로 생계를 책임지는 어린이를 안다고 답했다.

전쟁 상황에서 중단된 교육도 미래에 대한 우려를 더했다. 12살 제이납은 “너무나 끔찍한 상황을 많이 봤고 전쟁 말고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며 “나는 2년 동안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내 동생은 거의 교육이라고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성인 응답자의 60%는 “교육의 부재가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미국 하버드대의 아동보호·정신건강 전문가인 알렉산드라 첸 은 “아이들이 극단적인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유발하는 사건에 반복해서 노출되면 ‘독성 스트레스’ 상태에 빠진다”며 “이는 아이들의 신체 및 정신 건강에 평생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며, 뇌를 비롯한 다른 장기 발달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 계속 놓이면 성인이 되어서도 심장질환과 약물 남용 뿐 아니라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의 위험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2011년 초부터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이슬람권을 휩쓴 ‘아랍의 봄’ 당시만 해도 20~30년씩 독재정권에 시달리던 아랍권 상당수 나라의 국민들은 민주화의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튀니지를 뺀 나머지 모든 나라들은 곧이어 닥친 반동과 내전의 참화로 빨려들었다.

시리아의 상황은 특히 참담하다. 애초 바샤르 아사드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적 권리 확대를 요구하는 반체제 세력과 정부군의 충돌로 시작된 내전은 점차 권력 투쟁 및 이슬람 시아파-수니파 간 종파 분쟁 성격의 내전으로 변질됐다. 여기에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 국가(IS)가 발호하고 주변국들이 각기 이해관계에 따라 개입하면서 복잡하기 짝이 없는 국제 대리전으로까지 확대됐다. 장기간 전쟁으로 생겨난 대량 국외난민의 여파는 유럽의 난민위기와 극우 포퓰리즘 촉발, 중동 세력균형의 재편, 러시아의 급부상 등 지정학적 변동까지 불러오며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지난 주 보도자료를 내어, 인도주의적 지원이 절실한 시리아인이 1350만명에 이른다며 국제사회의 절박한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시리아 내전으로 지금까지 최대 32만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최근 시리아를 방문한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은 “시리아는 깊은 수렁에 빠져있다”며 “시리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국제사회의) 과감한 행동이 취해지지 않는다면 이 전쟁의 피해는 몇 세대가 지나도 복구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난민기구의 공식집계를 보면, 시리아에선 전쟁으로 지금까지 630만명의 국내실향민과 490만명의 국외 난민이 생겨났다. 전체 인구 2250만명(2012년 기준)의 절반이 전쟁난민인 셈이다. 또 5살 이하 어린이 중 약 300만명은 교육은커녕 세상에 ‘전쟁’ 말고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자라나고 있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가 13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시리아에서 최소 652명의 어린이가 공습이나 포격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는 전년보다 20%나 늘어난 수치다. 또 무장세력의 소년병으로 끌려간 어린이도 850여명으로 전년의 331명에 견줘 3배 가까이 늘었다. 끌려간 어린이들은 최전선에서 직접 전투에 동원되기도 했으며, 사형 집행인이나 자살폭탄 공격대원, 감옥 경비원 등의 극단적인 임무를 강요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직접적인 피해를 겪지 않은 어린이들의 삶도 비참하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지난해 알레포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에서 장기 포위전이 지속되면서, 인도주의적 지원이 끊긴 지역의 어린이들은 교욱은커녕 본인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아동노동과 조혼 등 극한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유니세프는 시리아 전체 가구의 75%에 이르는 가정에서 어린이들도 청소부, 넝마주이, 목수, 미용사 등으로 생계형 노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한 주차장에서 무장세력의 폭탄공격을 받아 벌집처럼 파편이 박힌 버스가 시리아 내전의 일상적인 공포를 증언하고 있다.  다마스쿠스/시리아 관영 <사나>(SANA)통신 제공, AP 연합뉴스
지난 1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한 주차장에서 무장세력의 폭탄공격을 받아 벌집처럼 파편이 박힌 버스가 시리아 내전의 일상적인 공포를 증언하고 있다. 다마스쿠스/시리아 관영 <사나>(SANA)통신 제공, AP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그러나 아직도 기회는 있다며 국제사회의 시급한 대응을 호소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중동 사무소의 정신건강 및 정서적 지원 담당인 마르샤 브로피는 “아이들은 회복력이 뛰어나며, 인터뷰에 응한 많은 아이들이 비행기 조종사, 의사, 선생님 등 아직 꿈을 잃지 않았다”며 “폭력 상황의 종료과 함께 적절한 지원과 조기 치료로 아이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시리아의 국내실향민과 국외 난민을 돕기 위해 올해 80억달러(약 9조원)가 필요하다며 각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은 “평화회담만으로 난민 귀환의 조건을 마련하거나 기금만으로 고통을 끝낼 수는 없지만 이는 가난과 불행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 중 하나”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노력”의 확대를 촉구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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