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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고난의 땅 가자지구 ‘삶의 전사’가 된 여성들

등록 2017-03-09 18:20수정 2017-03-09 22:32

통학버스 운전, 고기잡이, 대장간 망치질…
이스라엘 봉쇄 빈곤한 땅서 가족생계 책임
이슬람 사회 관습·전통 깨고 남성 영역까지
이스라엘군 총알에 고기잡던 동료 즉사하기도
“너무 가혹한 삶…아이들 미래는 나아지길”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가자지구의 철의 여인들’이란 제목으로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당차지만 고되고 위험한 삶을 조명했다. 사진은 가자지구의 유일한 여성 어부인 마들린 쿨랍. <알자지라> 누리집 갈무리.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가자지구의 철의 여인들’이란 제목으로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당차지만 고되고 위험한 삶을 조명했다. 사진은 가자지구의 유일한 여성 어부인 마들린 쿨랍. <알자지라> 누리집 갈무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사는 살와 스루르는 매일 아침 6시30분이면 일어나 1989년식 폴크스바겐 미니버스의 운전대를 잡는다. 2005년에 자신이 세운 유치원 어린이들의 통학버스다. “아이들이 처음엔 저를 ‘살와 아저씨’라고 불렀어요. 자동차 운전은 남자들만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그런 통념을 깨뜨렸죠.”

살와는 애초 남성을 운전사로 고용했다가 자신이 직접 버스를 몰기로 했다. 남성 운전사가 아이들과 눈높이를 못 맞추고 걸핏하면 늦는다는 학부모들이 불평이 쏟아져서다. “그가 안와서 전화를 하면 늘 ‘가고 있다’고 핑계를 댔어요. 아이들은 버스를 기다렸지만 끝내 안나타나곤 했죠.” 살와의 수업은 아이들이 버스에 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4살 꼬마에게 뒷좌석을 가리키며 영어로 “자인, 뒤로 가렴”하면 모든 아이들이 영어로 “뒤로 가, 뒤로 가”를 따라 한다.

지중해 동부 연안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철저하게 유폐된 땅이다.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누운 좁고 긴 영토의 북쪽과 동쪽은 이스라엘에 가로막혔다. 남쪽 이집트 접경에도 장벽과 철조망이 둘러쳐졌다. 가자지구는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건국을 선포한 이래 70년째 이어진 중동 분쟁으로 피폐해진 땅이기도 하다. 실업률이 42%로 세계 최고이며, 185만명 주민의 절반 이상이 유엔이 제공하는 구호식량으로 끼니를 잇는다.

살와 스루르는 유치원 어린이 통학버스를 직접 운전한다.  <알자지라> 누리집 갈무리
살와 스루르는 유치원 어린이 통학버스를 직접 운전한다. <알자지라> 누리집 갈무리
이런 가자지구에서 여성들이 이슬람 사회의 관습과 전통을 깨고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일까지 도맡으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아랍방송 <알자지라>는 지난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가자지구에서 여성으로는 최초이거나 유일한 일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소개했다. 가자지구는 경제활동인구 중 여성의 노동참여율이 15%밖에 안된다. 이들의 노동은 진취적 여성의 표상이기보단, 가자지구의 비참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30대 초반의 마들린 쿨랍은 가자지구에서 유일하게 고깃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여성이다. 새벽 3~5시면 출어해 주로 정어리를 잡는다. 10년전 척수염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았다. 그는 “매일 바다에 나가지만 돌아오리란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풍랑이나 사고 때문만은 아니다. “5해리 정도만 나가도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해요. 그래도 (먹고 살려고) 일을 할 수밖에 없어요.”

총알은 이스라엘 경비정에서 날아온다. 이스라엘은 ‘안보’를 이유로 가자 어부들의 조업 해역을 6해리(약 11㎞)로 통제한다. 이는 199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공존을 약속한 오슬로 협정에서 정한 범위의 3분의 1에도 못미친다. 이 정도 해역에선 어획이 시원찮다. 하루 평균 벌이는 고작 10셰켈(약 3000원)이다. 몇날째 맹탕을 치기도 한다. 그래도 목숨을 걸고 고기를 잡는다. 쿨랍은 함께 조업하던 남동생의 17살 친구가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숨진 끔찍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 “10여척의 배가 있었어요. 겨우 3해리쯤 나갔는데 이스라엘 경비정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총격을 시작했죠. 총알이 모하마드의 복부를 관통해 등을 뚫고 나오면서 즉사했어요.” 쿨랍은 단돈 10셰켈을 벌더라도 무슨 일이든 고기잡이보단 나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해 비서가 될 꿈을 갖고 있다.

아이샤 이브라힘(37)은 7남매의 엄마이자 가자지구에서 유일한 여성 대장장이다.  <알자지라> 누리집 갈무리.
아이샤 이브라힘(37)은 7남매의 엄마이자 가자지구에서 유일한 여성 대장장이다. <알자지라> 누리집 갈무리.
아이샤 이브라힘(37)은 7남매의 엄마이자 가자지구에서 유일한 여성 대장장이다. 임시변통으로 만든 텐트가 대장간이다. 거리나 파괴된 건물에 널부러진 금속류를 주워다 불에 달구고 해머로 수백번을 두들긴다. 옆에선 15살 딸이 풀무질을 하거나 엄마의 해머질을 교대해주며 돕는다. 그렇게 도끼, 칼, 강판, 닻 등 생활용품들을 만든다. 한 개를 만드는데 사흘 정도 걸리는데, 장에 내다팔면 10~20셰켈을 받는다. 그의 손은 퉁퉁 부어있고 늘 어깨와 등이 쑤신다.

본디 남편이 하던 일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야간 작업중 150㎏짜리 쇳덩이에 손을 찧으면서 가족의 삶도 바뀌었다. “끔찍한 밤이었죠. 구급차를 부를 형편이 안됐는데 다행히도 길가던 한 남자가 남편을 차에 태워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병원에선 상처가 감염으로 악화되는 걸 우려해 하루밤을 지켜보자고 했는데 우린 그럴 돈이 없어 곧장 집으로 돌아왔어요.” 이후 아이샤는 식탁에 먹을거리를 올리기 위해 날마다 사투를 벌인다. 그는 “우리 상황은 너무나 가혹한데 아이들을 위해선 이 일을 계속 할 수밖에 없어요. 제 아이들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죠. 그들에겐 더 나은 미래가 오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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