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교리 공유하나 ‘무함마드 후계’ 이견
1300년 넘은 원한…무슬림 85%가 수니파
1300년 넘은 원한…무슬림 85%가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20세기 이후 100년 가까이 중동 지역과 이슬람 세계의 주도권을 놓고 숙명적으로 대립해왔다. 사우디는 이슬람 수니파의 본산이며, 이란은 이슬람 소수파인 시아파의 종주국이다. 2일 사우디가 자국의 시아파 지도자를 ‘테러 혐의’로 전격 처형하자 이란이 강력히 반발하고, 사우디가 이란과의 단교까지 선언해버린 사태의 배경에는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뿌리 깊은 구원과 갈등이 깔려 있다.
현재 약 17억명으로 추정되는 세계 무슬림의 85~90%가 수니파다. 이슬람 종파 갈등의 뿌리는 7세기 아라비아 반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610년 이슬람교를 창시한 뒤 632년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사망하자, 아랍 지도층은 무함마드의 조카이자 사위인 알리를 후계자로 ‘추대’해야 한다는 주장과 덕망 있는 장로 중에서 ‘선출’해야 한다는 반론이 맞섰다. 양쪽의 힘겨루기 끝에 아부 바크르, 우마르, 오스만에 이어 알리까지 4대 칼리프가 선출된 ‘정통 칼리프 시대’(632~661년)가 이어졌다.
당시 2대와 3대에 이어 4대 칼리프인 알리마저 반대파에 암살당하자 무슬림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알리의 아들인 하산과 후세인이 세습 칼리프를 주장했지만, 680년 그들의 친인척과 지지자들까지 이라크의 카르발라에서 시리아에 기반을 둔 우마이야 왕조 세력에 무참히 학살당하자 양대 세력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다. 시아파는 후세인과 추종세력이 카르발라에서 학살당한 날인 이슬람력 정월 10일을 ‘아슈라’라고 하며 지금도 이날엔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하며 그 날의 고통을 되살린다. 무슬림은 결국 수니파가 대세를 이뤘고, 무함마드 혈통론으로 맞선 소수가 시아파가 됐다. 수니는 ‘순나와 공동체를 따르는 사람들’, 시아는 ‘(알리의) 추종자들’이라는 뜻이다.
수니와 시아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과 기본적인 교리를 공유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도 있다. 수니파는 역대 칼리프를 모두 무함마드의 적법한 후계자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아파는 아부 바크르, 우마르, 오스만을 권력을 찬탈한 이로 여긴다. 시아파에게 이슬람 지도자는 단순한 장로인 칼리프가 아니라 알라(신)의 선택을 받고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이맘이다. 시아파의 다수는 9세기에 홀연히 사라진 12대 이맘이 재림해 세상에 정의를 가져다 준다고 믿는 일종의 메시야 사상을 갖고 있다.
1926년 친서방 왕정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건국되고,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일어난 뒤로는 양쪽의 갈등이 중동 패권을 둘러싼 국제정치 갈등으로까지 확대됐다. 무엇보다 사우디는 아랍어를 쓰는 아랍족이 다수인 반면, 이란은 페르시아어를 쓰는 인도유럽어족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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