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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튀니지 ‘아랍의 봄’ 이후 첫 대선 실시

등록 2014-11-23 20:36수정 2014-11-23 22:47

23일 ‘아랍의 봄’ 이후 첫 대선이 치러진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 설치된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튀니스/AFP 연합뉴스
23일 ‘아랍의 봄’ 이후 첫 대선이 치러진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 설치된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튀니스/AFP 연합뉴스
528만명 생애 첫 민주선거 감격
‘세속주의’ 에셉시-‘인권’ 마르주키
27명 후보중 당선 유력
‘아랍의 봄’의 진원지인 튀니지에서 23일 아랍의 봄 이후 첫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2010년 12월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독재정권의 횡포에 항거해 분신하면서 아랍권 전역의 민주화운동을 촉발한 지 4년 만이다.

앞서 2011년 1월 튀니지에선 자인 엘아비딘 벤알리 전 대통령이 성난 민심에 쫓겨 3주만에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치면서 24년 독재정권이 붕괴했다. 튀니지의 국화(나라꽃)에 빗대어 ‘재스민 혁명’으로 불리는 민중시위에서 330여명이 목숨을 잃었으나 민주화 열기는 순식간에 아랍 전역으로 번졌다.

23일 약 528만명의 튀니지 유권자들은 전국 4500여곳의 투표소에서 생애 첫 민주선거의 감격을 맛봤다. 이번 대선은 1956년 튀니지가 프랑스 식민통치에서 독립한 지 58년 만에 치러진 사실상의 첫 자유 경선이다. 튀니지는 지금까지 세월을 2명의 대통령 통치 아래서 보냈다. ‘독립의 아버지’로 30년간 1~4대 대통령을 지낸 하비브 부르기바, 그리고 1987년 쿠데타로 집권했다가 민중혁명으로 쫓겨난 벤알리다.

이번 대선은 재스민혁명으로 꽃피운 튀니지의 민주화 여정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를 판가름하는 중대한 이정표다. 튀니지 선거관리위원회는 공정선거를 보장하기 위해 최소 8만명의 군·경과 외국인 선거감시단 600명을 포함한 2만2000명의 참관인을 전국 투표소에 배치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번 대선에는 무려 27명이 후보로 나설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당선이 가장 유력한 후보는 세속주의 성향 정당인 니다투니스의 원로 정치인인 베지 카이드 에셉시(87)와, 재스민 혁명 이후 과도정부를 이끌어온 반체제 인권운동가 출신 몬세프 마르주키(69)다. 아랍위성방송 <알자지라>는 23일 이번 선거를 “수십년 독재정권 아래서 번창한 옛 세력의 수호자와 2011년 (재스민) 혁명 이후 정치권에 ‘새로운 피’로 등장한 후보의 접전”이라고 평가했다. 후보가 난립한 만큼 첫 투표에서 과반 득표 당선자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 경우 상위 득표자 2명의 결선투표가 다음달 28일 치러진다.

에셉시 후보가 이끄는 니다투니스는 지난달 총선에서 전체 217개 의석 중 85석을 확보해 제1당으로 떠올랐다. 에셉시 후보는 부르기바 정부에서 외무장관, 벤알리 집권 때엔 의회 의장 등 과거 정권에서 고위직을 역임했으며, 재스민 혁명 직후 1년 동안 과도정부 총리를 맡기도 한 변호사 출신의 직업 정치인이다.

프랑스에서 유학한 의사 출신인 마르주키는 벤알리 집권 시절 양심수보호위원회 창립을 주도한 인권 운동가다. 2001년 공화의회당을 창설했다가 벤알리 정권의 탄압을 받자 프랑스에 망명해 재야 운동을 해왔다. 재스민 혁명 넉 달 뒤인 2011년 5월 귀국해, 그 해 제헌의회 투표에서 제한적 권한만 가진 과도정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가 이번에 ‘진짜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튀니지 수도 튀니스의 한 투표소에 아침 일찍 나온 유권자 무나 제발리는 <로이터> 통신에 “오늘은 튀니지 역사에서 또하나의 특별한 날”이라며, 민주적 경선으로 자신이 선택한 지도자에 투표하게 된 것에 뿌듯해했다. “이제 우리는 아랍 세계에서는 유일하게 투표가 끝나기 전까지는 누가 대통령이 될 지 모르는 나라가 됐어요.”

유권자들은 ‘안정’과 ‘개혁’을 모두 바라지만 현실적으로는 두 후보의 성향이 갈린다. 중년의 운수노동자인 물디 체르니는 지지 후보를 묻는 <에이피>(AP) 통신 기자에게 에셉시 후보를 꼽았다. “사람들이 (생활고와 정치적 격변에) 지쳤어요. 그는 안보와 안정을 보장해 줄 경험 많은 베테랑 정치인입니다.” 반면 튀니스의 노동자 거주지에 사는 아제딘 이사위는 “청렴하고 도덕적이며 신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투표했다”며 마르주키에게 한 표를 주었다고 밝혔다.

한편, 벤알리 퇴진 이후 첫 총선에서 압승했던 이슬람주의 정당인 엔나흐당은 “나라의 양극화와 분열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이번 대선에 후보를 내지 않고 마르주키 후보를 지지했다. 지난해 초 세속주의 성향의 야권 지도자 두 명에 대한 암살 사건을 계기로 이슬람 정권에 대한 역풍이 커진 까닭이다. 엔나흐당은 지난해 총선에서는 68석(31.3%)을 얻는데 그쳤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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