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여 군벌 ‘땅따먹기’…사망자 속출
‘카다피 축출해 민주화’ 주장 서방
외교관·자국민 철수권고…체면 구겨
‘카다피 축출해 민주화’ 주장 서방
외교관·자국민 철수권고…체면 구겨
리비아가 무장세력들 간의 내전 상태로 빠져들었다.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만 붕괴시켰을 뿐 미국 등 서방의 리비아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고, ‘돈과 권력’을 장악하려는 무장세력들 간의 전투만 격렬해지고 있다. 주요국은 일제히 리비아에서 자국민 대피령을 내렸다.
프랑스와 독일, 네덜란드는 27일 리비아에 있는 자국민에게 리비아를 떠나라고 권고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벨기에, 스페인, 터키, 필리핀도 대피령을 내렸다. 앞서 26일에는 미국이 트리폴리 주재 대사관을 폐쇄하고 직원들을 튀니지로 철수시켰으며, 영국도 자국민에게 리비아를 떠나라고 했다. 유엔 직원들도 이미 리비아에서 철수한 상태다. <가디언>은 “서방국가들의 대피령은 3년 전 리비아에 민주주의를 심겠다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폭격을 주도했던 영국과 프랑스한테는 완전히 체면을 구기는 일”이라고 평했다.
그럼에도 외교관과 자국민 대피령을 내린 것은 리비아의 상황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선 26∼27일 이틀간 정부군과 이슬람주의 무장세력 사이의 교전으로 38명이 숨졌다. 수도 트리폴리에선 지난 2주간 트리폴리 국제공항을 장악하려는 무장단체들 사이의 교전으로 97명이 숨지고 404명이 다쳤다. 지난 26일에는 이집트 노동자 거주지역이 로켓공격을 받아 23명이 숨졌고, 27일엔 튀니지로 철수하는 영국 외교관이 탄 차량이 매복공격을 받기도 했다.
트리폴리 공항을 둘러싼 전투는 리비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트리폴리 공항은 카디피 정권 붕괴 이후 트리폴리 남서부 진탄 출신의 무장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스라타 출신 무장세력과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 연합해 이들을 공격하면서 공항이 폐쇄되고 항공기들이 파괴됐다. 리비아에는 무장집단이 1700여개나 되며, 카디피 정권과 싸우는 과정에서 온갖 무기를 갖췄다. 지역과 부족, 종파에 기반한 무장세력의 영향력이 중앙정부보다 크다. 이들은 몇개 집단씩 연합해 더 많은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카다피 축출 뒤 리비아는 2012년 7월 총선을 실시해 제헌의회를 꾸리고 정부를 출범시켰지만, 내각만 다섯 차례 바뀌었다. 지난달에는 두번째 총선이 치러졌으나 무력 충돌만 격화됐을 뿐이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무장세력들은 한때 카디피에 대한 증오로 뭉쳤을 뿐 이제는 자신들만의 목적을 위해 싸우고 있다 ”며 “이들 무장세력의 공통분모는 돈과 권력뿐”이라고 전했다.
서방국가 외교관들의 철수는 리비아가 언제 끝날지 모를 내전의 소용돌이 빠져들었음을 뜻한다. <뉴욕 타임스>는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뒤 미국과 동맹국들은 리비아를 도와 민주주의나 치안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외교관들이 떠나면서 리비아인들은 도대체 누가 끝없는 분쟁을 중재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고 있다”고 전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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