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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테러 공포·일자리 부족…“그래도 미래 포기할 수 없어요”

등록 2013-05-14 21:01수정 2013-05-15 09:28

이라크 전쟁 10년 타임라인 (※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창간기획] 전쟁과 평화
이라크 시민들 고난과 희망
“앗살람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함께하길)!” 5일(현지시각)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의 이븐 나피스 병원 수술실에 창백한 얼굴의 깡마른 소년이 휠체어를 타고 들어서자 의사 아킬 유시르(40)가 환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알라이쿰… 살라(당신에게도 평화가)….” 난생처음 접하는 수술실 분위기에 잔뜩 겁먹은 듯 소년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자 아킬이 소년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만지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전혀 아프지 않으니까.” 소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의사 아킬 유시르(40)
의사 아킬 유시르(40)
의사 아킬 유시르

전쟁기간 동안 하루 100여명 수술
테러리스트의 협박에 시달리기도
“평화 정착되면 이라크 달라질 것”

소년은 한달여 전인 4월7일 바그다드 시내의 한 카페에서 2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탄 테러가 발생했을 때 폭발의 충격으로 2층에서 떨어졌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왼쪽 가슴을 크게 다쳤다. 소년의 가슴에는 계속해서 복수가 차올랐다. 이날 수술은 소년의 가슴에 박힌 이물질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폭탄 테러를 비롯해 전쟁의 후유증으로 신음하는 어린 환자들은 아킬에겐 너무나 익숙하다. 그는 현재 한국의 한-이라크 우호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라크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어린 환자들을 한국에 보내 치료하는 사업의 실무를 맡고 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이후 10년 동안 전국적으로 11만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는데, 이 가운데 20%가 여성과 어린이라는 국제인권단체의 통계가 있다. 하지만 전쟁에 따른 후유증으로 각종 질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고려하면 그 피해는 더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아킬의 병원에 실려온 어린 환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기형인 아이들이 많다. 전쟁 기간에 사용된 각종 포탄에서 나온 화학물질이 그 원인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정확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킬도 어린 시절에 총상을 입었다. 17살 때인 1980년 사담 후세인 정권 반대 집회를 구경하다 군인들이 쏜 총에 오른쪽 발목을 다쳤다. 동네 병원 의사가 빨리 그를 치료하지 않았다면 불구가 될 뻔했다. 하지만 아킬을 치료한 의사는 환자들을 치료해줬다는 이유로 부인과 함께 처형당했다. 큰 충격을 받은 아킬은 이 일을 계기로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누르 후다 우네아스(20)
누르 후다 우네아스(20)
대학생 누르 후다 우네아스

10살때 테러로 아버지 잃고 고통
현재는 졸업 뒤 취업문제 고민중
“힘들어도 희망 버리지 않을겁니다”

아킬이 전쟁 기간 동안 테러리스트들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병원을 지킨 것은 이런 경험이 뒷받침됐다. 동료 의사들이 테러를 피해 요르단과 카타르 등 인근 아랍 국가나 유럽으로 망명했지만 아킬은 병원에 남았다. 그것이 자신을 치료해 준 의사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병원에 남은 동료 의사들과 함께 24시간 내내 환자들을 돌봤다. 하루에 100명이 넘는 환자들을 수술하는 날이 흔했고, 병실은 물론 응급실에 환자들이 꽉 들어차서 복도와 병원 앞마당까지 환자들을 수용해야 했다.

전쟁은 의사들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안겨줬다. 이라크의사협회에 따르면 전쟁 기간 동안 모두 500여명의 이라크 의사들이 미군의 공습과 테러단체들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아킬과 친하게 지내던 한 동료 의사도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아킬은 현재 이라크에서 손꼽히는 심혈관계 전문의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의 유력 정당인 이슬람최고평의회 의장 암마르 하킴의 주치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선진 의료기술을 더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원한다. 이미 2006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의 원광대에서 1년여 동안 연수를 받은 바 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아킬과 같은 유능한 의사들이 많이 외국으로 나가 공부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테러를 피해 외국으로 떠났던 의사들도 속속 귀국하고 있다. 아킬은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젊은 인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이라크 의료계의 미래는 밝다”며 “평화가 정착되면 이라크는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바그다드의 이라키야대학에 다니는 누르 후다 우네아스(20)는 2003년 폭탄 테러로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는 집 근처의 슈퍼마켓에 먹을 것을 사러 갔다가 폭탄이 터져 그 자리에서 숨졌는데, 당시 10살이었던 누르는 그 폭발음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마치 천둥소리 같았죠. 이웃집 아저씨가 허겁지겁 달려와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고, 그 말을 듣자마자 어머니는 혼절하셨어요.” 그때의 충격으로 누르의 어머니는 지금까지 잦은 병치레를 하고 있다.

6남매 중 넷째인 누르는 오빠들의 도움으로 중학교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오빠들은 형제들 가운데 가장 공부를 잘한 누르를 공부시키기 위해 돈을 벌었다. 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누르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더이상 오빠들한테 신세를 지기 싫었다.

법학을 전공하는 누르는 대학을 마치면 법관이 될지 아니면 로펌에 들어갈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지금보다는 미래가 나아질 것으로 확신한다. 20%를 웃도는 중동 지역의 고질적인 청년실업도 누르의 희망을 꺾지는 못한다. “전쟁은 내 또래의 젊은 세대에게 큰 상처를 줬어요.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라크의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 있으니까요. 우리가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이라크의 미래는 밝습니다.” 누르는 한국의 젊은이들한테 “이라크가 한국처럼 발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말했다.

바그다드/글·사진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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