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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얼굴도 ‘학살’도 닮았다…30년전 아버지처럼

등록 2012-03-06 19:22수정 2012-03-07 13:25

1982년·2012년 닮은꼴 참극
바샤르 아사드의 정부군
1년새 7500명 넘게 죽여
동생이 정예군 끌고 지휘
30년전 아버지 하페즈는
수니파 2만~4만명 대학살
삼촌이 봉기 진압 앞장서
 “내 아들의 목이 따였어요. 겨우 12살인데…. 남자들과 소년들 36명이 (시리아 정부군에게) 붙잡혀 죽었습니다.” 사흘 밤낮을 걸어 시리아 홈스에서 빠져나온 한 여성 주민이 5일(현지시각) 홈스 인근에 잠입해 취재 중인 영국 <비비시>(BBC) 기자에게 말한 참상이다. 12살 소년의 아버지는 지난 2일 어린 아들이 군인들의 손에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50m 떨어진 곳에 숨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군인 한 명이 아들의 머리를 군화발로 밟고 있는 동안 다른 한 명이 아이를 죽였다. 그 놈들이 낄낄거리며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지난 1일 시리아의 반정부 자유시리아군이 퇴각한 반독재 투쟁 중심도시 홈스에서 바샤르 아사드(47) 정부군이 잔혹한 보복살육을 벌이고 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다른 한 여성은 “군인들이 (피난길에 오른) 주민 일행의 남편들을 검문소에서 붙잡아갔어요. 그들을 양처럼 도륙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주 정부군에서 탈영한 한 병사는 “지휘관이 ‘움직이는 것은 민간인이든 반군이든 가리지 말고 쏴버려라’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털어놨다. 시리아 학살을 고발하는 증언과 인터넷 동영상(유튜브)들은 차고 넘친다. 하나같이 처참하고 가슴이 서늘하다. 최근 유엔은 1년째 계속되는 시리아 사태로 숨진 사람이 75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아사드 집안의 피엔 ‘학살의 유전자’라도 흐르는 걸까.

 꼭 30년 전인 1982년 2월, 현 대통령 바샤르의 아버지이자 전임 대통령인 하페즈 아사드(1930~2000)는 반정부 봉기에 나선 이슬람 수니파 주민 2만~4만명을 전투기까지 동원해 꼬박 한달간 살육한 ‘하마 대학살’로 악명을 떨쳤다. 당시엔 하페즈의 둘째 동생인 리파아트(75)가 보안군 사령관으로 하마 대학살 등을 저지르며 형의 권력을 보위했다. 잎서 하페즈는 1970년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했다. 동생 리파아트는 1984년 형 하페즈에게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해 쫓겨난 뒤 현재 영국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바샤르의 둘째 동생인 마헤르(45)가 시리아 최정예군인 제4기갑군단 및 공화국수비대 사령관으로 무차별 학살을 지휘하고 있다. 지난 주 시리아 반정부군의 거점인 홈스 외곽을 장악하고 보복 살육극을 벌이고 있는 부대가 바로 제4군단 소속이다.

 시리아 외교관 출신으로 미국에 망명한 바삼 비타르는 지난해 6월 <뉴욕 타임스>에 “1979~82년 시리아의 반정부 봉기를 돌아보면, 리파아트는 포악한 살인자였다. 그런데 역사가 되풀이되면서, 지금은 마헤르가 포악한 자”고 말했다. 대를 이은 학살, 부전자전이다.

 시리아군 여단장 출신의 망명객 아킬 하솀은 지난주 <프랑스24> 방송에 “이 살육부대(제4군단)는 실전 경험이 많고 고도의 훈련을 받았으며, 시리아에서 가장 좋은 무기들로 무장했다”며 다른 군인들도 이 부대가 과거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저지른 잔학행위를 알고 있어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범죄 전과와 엄중한 상호 감시는 장병들의 배신과 탈영을 억제하는 효과로 작용한다.

 시리아 정부는 유엔 조사단의 입국을 허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홈스에는 “반군들이 설치한‘부비트랩’(매설폭탄)들을 제거하고 있다”는 구실로 접근을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시리아는 인구의 75%가 이슬람 수니파이지만, 아사드 집안은 전체 인구의 12% 남짓한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다. 1970년 이래 42년째 아사드 가족과 친인척, 최측근이 정치·군사·경제 등 모든 권력을 독점해오고 있다. 정치적 반대파는 철저히 숙청했으며, 온 사회에 촘촘한 감시망을 구축했다. 지난달 바샤르가 강행한 형식적인 개헌안 국민투표 직전까지도, 시리아 헌법은 “집권 바트당의 지도적 지위”를 명시함으로써 일당독재를 법적으로 보장해왔다.

 하페즈는 4남 2녀를 두었다. 그 중 장녀는 어렸을 때, 장남 바셀은 1994년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 애초 하페즈의 후계자로 꼽히던 장남 바셀이 죽자, 다마스쿠스 의대를 졸업한 차남 아사드가 영국에서 수련의 과정 중 귀국해 군부를 장악하며 후계자 구도를 닦았다. 아사드는 2000년 대선에서 ‘유럽식 교육을 받은 젊은 지도자’ 이미지로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당선했다. 그러나 장미빛 기대가 핏빛 환멸로 바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가족과 극소수 기득권층의 독재가 구조화한 시리아에서, 바샤르 역시 족벌통치의 유지·강화를 선택했다.

 바샤르의 숙부인 자밀은 군벌 사령관과 바트당 의원을 지내다 2004년 사망했으며, 매형 아세프 샤우카트(62)는 군 정보국장을 거쳐 참모차장을 맡고 있다. 바샤르의 고종사촌 두 힘마 샬리시(56)는 대통령경호실장이며, 또다른 고종사촌 리야드는 정부기구인 병영시설건설사 사장이다. 바샤르의 모계인 마클루프 집안은 시리아의 통신, 소매, 금융, 전력, 석유와 가스 등 경제 전반을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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