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정부군 포격에 영국기자 다리에 중상
28일 들것에 실린 채 포격 뚫고 탈출 성공
동료기자 3명 실종…탈출 돕던 13명도 죽어
28일 들것에 실린 채 포격 뚫고 탈출 성공
동료기자 3명 실종…탈출 돕던 13명도 죽어
시리아의 학살 현장을 취재하던 영국 기자 한 명이 28일 들것에 실린 채 26시간에 걸친 필사적인 탈출에 성공했다. 그와 함께 차량을 타고 시리아를 빠져나오려던 다른 3명의 유럽 기자들은 바샤르 아스드(47) 정부군의 집중 포격을 받아 탈출에 실패한 뒤 연락이 끊겼다. 이들의 탈출을 돕던 시리아의 자원봉사자 13명은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다.
영국 일간 <타임스>는 28일, 자사의 일요판인 <선데이 타임스>의 사진기자 폴 콘로이(47)가 “(시리아의 인접국인) 레바논으로 피신해 안전하게 있으며, 몸과 정신이 모두 양호하다”고 공식발표했다. 콘로이는 레바논의 한 병원에서 다리 부상을 치료받고 있다.
<타임스>가 이날 보도한 콘로이의 탈출기는 그야말로 지옥에서 가까스로 살아돌아온 한편의 드라마다. 콘로이는 지난 22일 시리아 반독재 투쟁의 중심지인 홈스의 프레스센터에 있다가 시리아 정부군의 집중포격으로 다리에 중상을 입었다. 현장에 함께 있던 미국 출신의 자사 동료 여기자 마리 콜빈(56)과 프랑스의 프리랜서 사진기자 레미 오슐리크(28)는 즉사했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의 여기자 에디트 부비에(31)도 다리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스페인 일간 <엘문도>의 하비에르 에스피노사와 프랑스 프리랜서 기자 윌리엄 대니얼스는 부상을 면했다. 이날 부상 기자들을 위해 의약품을 밀반입하던 스무살 안팎의 시리아 청년 7명은 시리아 정부군의 포격에 숨졌다.
생존 기자들의 위험천만한‘시리아 탈출’작전은 국제구호단체 중 시리아에서 유일하게 활동 중인 적신월사(이슬람권의 적십자사)가 27일 시리아 정부에 이들의 ‘피신’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한 뒤 시도됐다. 시리아 야권조직인 ‘아바즈’가 레바논으로부터 홈스로 식량과 의약품을 밀반입하던 비밀 경로를 통해 탈출 안내와 호송을 맡았다. 홈스에서 레바논 국경까지 약 32㎞의 길목 곳곳에는 지뢰밭과 군사 검문소, 군 기지가 깔려 있었다.
어둠을 틈타 기자 4명과 시리아 활동가들을 태운 호송차량들이 홈스를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포탄이 쏟아졌다. 아바즈의 대변인은 “탈출 작전은 처음부터 잘못 풀렸다. 시리아 활동가 3명이 숨졌고, 콘로이 혼자서 빠져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는데, 홈스 외곽의 바바 아무르 지역에 피신 중인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콘로이 일행이 위성전화를 통해 국경 지대가 안전한 지 확인한 뒤 다시 이동했지만 또다시 집중 포격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시리아 활동가 10명 정도가 또다시 목숨을 잃었다. 일행은 은신했다가 밤늦게야 마침내 시리아를 빠져나왔다”고 설명했다.
콘로이의 아내 케이트는 “너무나 기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지금 시점에서 더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겠다”며 감격을 자제하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날 탈출작전은 비밀리에 진행됐지만 중간에 몇몇 서구언론들에 새 나왔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탈출 작전이 완료되기도 전에 에디트 부비에의 ‘탈출 성공’을 공개했다가 뒤늦게 발표를 철회하기도 했다. 아바즈의 대변인은 “사람들이 탈출 소식을 전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에 크게 실망했다. 보도가 되는 바람에 홈스 주민들과 위험에 처한 다른 기자들을 돕는 우리 작전이 위험하게 됐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탈출에 실패한 스페인의 에스피노사 기자는 최근 수일 동안 트위터에 홈스의 참극을 실시간 중계해왔으나, 지금은 더이상 포스팅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지난 27일 그가 트위터에 올린 마지막 사진에는 “피로 물든 (홈스 외곽의) 바브 알아마르 지역의 도랑”이라는 설명이 달려있었다.
한편 린 파스코 유엔 사무차장은 이날 “최근 시리아에선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해 민간인 희생자가 하루 100명을 넘을 때가 많다는 믿을만한 보고가 있다”며 “(지난해 3월 시리아 민중 봉기 이후 지금까지) 사망자가 7500명을 넘는 건 분명하다”고 밝혔다. 유엔 인권위는 시리아에 당장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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