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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이란 핵 과학자 암살에 드리운 ‘모사드의 그림자’

등록 2012-01-12 21:09수정 2012-01-12 22:35

이란 핵과학자 피살 사건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핵 갈등 물밑에선 추악한 테러
2년새 폭탄 테러로 4명 희생…미, 즉각 “무관” 성명
이스라엘·서구의 ‘이란 핵개발 저지 전략’ 일환 분석
언론도 “이란 반정부 세력 훈련”등 모사드 소행 점쳐
*모사드: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지난 11일 아침 8시30분(현지시각) 이란의 수도 테헤란. 출근길 차량 정체가 절정이던 도심 거리에서 느닷없이 은색 ‘푸조 405’ 승용차 한 대가 폭발했다. 1명은 즉사했고, 동승한 2명 중 1명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에서 숨진 사람은 모스타파 로샨(32). 테헤란공과대학의 핵물리학 교수이자, 이란 중부 도시 이스파한에 있는 나탄즈 우라늄농축시설의 부감독이었다고 이란의 반관영 <파르스> 통신이 보도했다.

■ 첩보영화 같은 암살작전 로샨은 이날 오전 일찍 테헤란 북부의 자택을 나서, 다른 남자 2명과 함께 근무지인 나탄즈 핵시설로 향하고 있었다. 차가 좀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던 중, 괴한 2명이 탄 오토바이가 접근했다. 오토바이 뒷좌석의 괴한이 몸을 굽혀 차량 옆면에 소형 자석폭탄을 부착하고 유유히 사라지는 순간 폭탄이 폭발했다. 로샨이 집을 나설 때부터 뒤를 밟으면서 적당한 공격 시점을 노린 게 분명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로샨을 비롯해 차량 탑승자 3명 중 2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지만, 행인은 1명만 경상을 입는 데 그쳤다. 폭발 충격으로 차의 문짝이 가로수까지 날아갔지만, 다른 부분은 멀쩡했다. 외신들은 이번 테러에 사용된 폭발물이 살상 범위를 최소화해 공격 대상 차량의 안쪽만 겨냥하도록 정교하게 제조된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이날 테러는 2010년 1월12일 마수드 알리 모하마디 당시 테헤란대 입자물리학 교수가 테헤란 자택 앞에 세워진 오토바이가 폭발해 숨진 지 꼭 2년 만이다. 이란에선 최근 2년 새 핵과학자들에 대한 의문의 테러가 잇따라 4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 오토바이를 이용한 테러였다. 이란은 그때마다 이스라엘의 대외 정보기관 모사드와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범행의 배후로 지목해왔다.

이번 사건은 이란의 핵개발을 둘러싼 이란과 서구의 긴장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와중에 발생했다. <파르스> 통신은 11일 미국의 이스라엘 안보 관련 전문 유대인 블로거인 리처드 실버스타인을 인용해, 이번 사건이 이스라엘 모사드와 프랑스에 본부를 둔 이란 반체제 조직 무자헤딘할크이란(MKO)의 공동 소행이라고 보도했다.

실버스타인은 이날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믿을 만한 이스라엘 정보 소식통이 오늘 살해는 모사드와 무자헤딘할크이란이 한 일이라고 확인해주었다”며 “이번 테러 수법은 페레이둔 아바시와 마지드 샤흐리아리 등 다른 이란 핵과학자들에 대한 암살 전례를 상기시킨다”고 주장했다.

이란 핵과학자들에 대한 과거 4차례의 테러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범행을 주장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테러가 대부분 테러 명분과 함께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 백악관은 즉각 이번 테러 공격을 비난하며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란 공식 입장을 냈다.

■ ‘목따기 전략’ 이스라엘과 서구가 이란 핵프로그램을 저지하기 위해 ‘은밀한 수단’을 동원한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은 베니 간츠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이 전날 의회에서 “이란한테 2012년은 국제사회의 점증하는 압박, 지도부 내부의 변화, ‘이상한 방식’의 사건들이 복합된 결정적인 해가 될 것”이라고 말한 지 채 24시간도 안 돼 일어났다. ‘이상한’ 사건이 이란 핵개발을 겨냥한 비밀공작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대외정보기관 MI-6의 존 소어스 국장은 “이란 같은 나라들이 핵무기 개발을 어렵게 하기 위한 정보기반 작전이 필요하다”며 “정보기관의 역할은 이런 나라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해 치명적인 물질과 기술의 습득을 늦추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는 11일 이라크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모사드가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에서 이란의 반체제 활동가들을 모집해 군사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외에 망명중인 이란 반체제 청년들을 이란의 핵개발 정보 수집이나 이란 핵기술자 암살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이란 핵과학자들에 대한 테러의 배후가 누구든 간에, 이란은 자국의 핵프로그램을 저지하려는 이스라엘과 서구의 ‘선전포고 없는 공격’을 받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핵확산 전문가인 마크 피츠패트릭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 단계까지 가기에는 아직 터득하지 못한 핵심기술 분야가 꽤 있으므로, 이런 식의 ‘목따기 전략’(Decapitation strategy)은 이란의 핵개발을 늦추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란은 그런 (전략에 구애받는) 수준을 넘어서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 모사드

1949년 창설된 이스라엘의 대외정보기관으로 국내 담당인 신베트와 함께 양대 정보기관이다. 총리 직속 조직으로 1200여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준군사조직이다. 1960년 아르헨티나에 숨어 지내던 독일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찾아내 이스라엘 법정에 세우면서 주목받았고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자국 선수단을 살해한 팔레스타인 검은 9월단 조직원들을 이후 7년에 걸쳐 모조리 암살했다. 2010년 2월 두바이의 한 호텔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고위 간부를 독살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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