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장소서 여성들 물담배…‘정적’ 파타당 집회도 허용
관용·유연성 확대 눈길…민주화·정세 변화 ‘새바람’
관용·유연성 확대 눈길…민주화·정세 변화 ‘새바람’
엄격한 규율과 무장투쟁의 상징, 하마스가 변신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통치하고 있는 가자지구에서,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물담배를 피우거나 남자 미용사들이 여성들의 머리를 만지는 일이 더 이상 엄격한 규제의 대상은 아니다.
가족이 레스토랑을 운영한다는 나세르 라드완은 “일상이 예전보다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그의 식당에서도 여성들이 물담배를 즐긴다. 심지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집권당이자 정적인 파타당의 집회도 용인해준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하마스는 지난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도 파타당의 견제와 이스라엘의 탄압으로 집권하지 못하자, 이듬해 파타 쪽과 내전까지 치른 끝에 가자지구를 점령한 무장 정치조직이다. 이후 하마스는 엄격한 종교(이슬람)적 생활을 강조하고, 정치적 반대파들을 축출해왔다.
그러나 올해 ‘아랍의 봄’ 이후 최근 몇달새 이런 분위기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을 현지 인권단체들과 정치적 라이벌들도 인정하고 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11일 보도했다. 하마스의 정책에 관용과 유연성의 폭이 부쩍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하마스가 집권 5년 동안 정치적 기틀을 다진데다 ‘아랍의 봄’에서 여러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파우지 바룸 하마스 대변인은 “하마스 보안군의 개별 지휘관들과 열혈 조직원들이 일부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들이 하마스 정부의 이념과 정책을 대표하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팔레스타인 의회의 하마스쪽 의원인 후다 나임은 “이런 (변화의) 움직임이 아랍세계를 휩쓴 민주화운동의 사례들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며 “타자에 대한 더 많은 관용이 필요하다는 것도 함께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서방이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을 벌이는 하마스를 테러 집단으로 낙인찍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도 11일 “하마스가 당분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다음 총선을 준비하느라 폭력적 분쟁에는 관심이 없다”고 분석했다. “하마스가 중동지역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무슬림 운동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하마스는 지난달 24일 팔레스타인 집권당인 파타와 만나, 극심한 반목과 대결을 접고 내년 5월에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함께 치르기로 전격 합의한 바 있다.
최근 하마스가 국외 활동의 본거지인 시리아 대표부의 수를 크게 줄이고 지도부와 조직원들이 대거 귀환한 것도 ‘아랍의 봄’으로 달라진 지역정세와 관련이 있다.
우선 시리아 민주화운동에 대한 바샤르 아사드 정권의 무자비한 유혈진압이 지속돼 현지 상황이 어수선해진데다, 더이상 시리아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또 하마스의 ‘뿌리’인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이 이집트 혁명 이후 처음으로 지난달 치러진 1차 총선에서 큰 승리를 거두면서, 하마스도 무장투쟁보다 정치적 영역의 확장이 더 중요해졌다. 하마스는 현재 무슬림형제단의 수많은 분파 조직 중 유일하게 실질적 통치권을 장악한 세력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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