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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영, 이란대사관 폐쇄 ‘초강경’ 대처

등록 2011-11-30 20:10수정 2011-12-01 10:20

이란대학생 영국대사관 점거
48시간내 외교관 추방…테헤란 자국 대사관도 폐쇄
노르웨이·독일 등도 제재 동조 움직임…파장 커질듯
 “영국에게 죽음을!”

 29일 오후 이란 주재 영국대사관은 격렬한 반영 구호가 터져나오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수도 테헤란에 있는 영국 대사관과 외교관 입주 건물이 동시에 이란 청년 수백명의 급습을 받은 것.

 시위대 일부는 대사관 건물 안으로 난입해 유리창을 깨뜨리고, 서류 뭉치들을 내던지고, 이란 국기를 내걸었다. 대사관 밖의 시위대는 영국, 미국, 이스라엘의 국기를 불태웠다. 주변의 시민 수백명도 몰려들어 사태를 지켜봤다.

 이란 경찰은 이날 저녁 늦게서야 현장을 수습하고 치안을 확보했다. 호세인 사제디니아 테헤란 경찰국장은 이날 저녁 “영국 대사관에 들어간 대학생 여러 명을 체포했으며 대사관은 비워졌다”며 “체포된 이들은 사법당국에 넘겨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 외교부는 공식성명을 내어 “일부 시위대의 용납할 수 없는 행동에 유감을 표명한다”며 진상조사를 약속했다.

 영국 정부는 “(이날 충돌에 따른) 심각한 부상은 없었다”고 확인했지만, 서방으로선 미국과 이란의 국교 단절까지 불러온 1979년 11월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의 악몽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그해 2월 이란 최고지도자 루훌라 호메이니가 이슬람혁명을 성공시키자 팔레비 국왕 일가는 미국으로 피신했고, 이란 시위대는 팔레비의 송환을 요구하며 미국 대사관 직원 52명을 15개월이나 억류했었다.

 이번 점거시위 사건에는 이란 안팎을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배경이 깔려있다.

 우선 이란 내부에선 의회를 장악한 강경보수파 이슬람주의 세력이 목소리를 부쩍 키우면서, 세속주의 성향의 신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게 대외 강경정책을 주문해왔다. 또 서방은 이란의 핵프로그램과 중동 지역에서의 이란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경계심으로 이란에 대한 압박의 고삐를 바짝 조여왔다.

 이란 국영 <프레스 TV>는 이날 “이란 의회가 영국과의 국교 수준을 낮추는 법안을 통과시킨 뒤, 여러 대학교 소속 학생들이 영국 대사관에 들어갔으며, 경찰이 이들의 난입을 제지했(으나 실패했)다”고 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시위대 중에는 이란 최정예 혁명수비대의 산하조직으로 알려진 바시지 민병대원들도 포함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란 경찰이 시위대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는지, 점거를 사실상 묵인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앞서 28일 이란 의회는 자국 주재 영국 대사를 2주 안에 추방하고 영국과의 국교를 대리대사급으로 격하하는 내용의 법안을 87%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으며, 이란의 최고 헌법기관인 헌법수호위원회는 이를 최종 승인했다. 지난 주 영국과 미국이 이란의 모든 은행들과의 금융 거래 중단을 포함한 강도 높은 추가제재를 선언한 데 대한 반발이다.

 이란 정치학자 하산 세드기는 <로이터> 통신에 “이란과 서방의 급진주의자들은 언제나 위기를 선호한다”며 “이란의 강경파들은 그런 위기를 국민을 단결시키고 악화된 경제사정의 원인을 오도하는 데 이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그렇잖아도 냉기류가 흐르는 서방과 이란의 대립 국면을 더욱 차갑게 얼어붙게 하고 있다. 영국은 30일 이란 주재 자국 대사관의 모든 직원들에게 철수령을 내리고, 이란 내 영국인들에게도 외출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비상 안보회의를 소집해 “이란 정부는 우리 외교관들을 보호하지 못한 데 대한 심각한 결과가 따를 것임을 알아야 한다”며 “조만간 적절한 대응 조처를 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윌리엄 헤이그 외무장관도 “영국은 이같은 무책임한 행위를 극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이번 사태는 외교관 보호 의무를 규정한 비엔나 조약에 대한 중대한 위반으로, 이란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마침 이날 우리나라를 방문 중이던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이번 사태는 영국민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한 모욕”이라며 “영국 대사관 공격 사건을 가장 강력한 어조로 비난한다”고 가세하고 나섰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우리는 이런 식의 공격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이란 당국은 외교관의 안전과 재산 보호에 관한 국제적 의무를 존중할 것을 촉구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란과 서방의 극한대립은 앞으로도 한동안 악화일로를 치달을 전망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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