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총리 지명자 인준…시민들 “지켜보겠다”
“오, 조국의 수호자들이여, 우리 시대의 영광을 위해 모이자/우리의 핏줄에 피가 솟구친다, 우리는 조국을 위해 죽으리라.”
22일 튀니지 수도 튀니스의 바르도궁 의사당에서 튀니지 국가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올해 초 재스민 혁명으로 24년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튀니지에서 역사적인 제헌의회가 개회했다. 올해 내내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쓴 ‘아랍의 봄’이 본격적인 민주주의 여정의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기도 했다.
혁명 이후 제헌의회 구성까지의 임무를 마치고 물러나는 임시정부의 푸아드 메바자 대통령은 “지금은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역사적 순간”이라고 선언했다. 지난달 튀니지 역사상 첫 자유선거로 선출된 제헌의회 의원 217명과 임시정부 각료들은 감격에 겨워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1956년 프랑스로부터 튀니지 독립을 이끌었던 영웅 아흐메드 메스티리도 “오늘이 ‘제2의 튀니지 독립’ 같다”며 감격했다. 지난 1월 자인 엘아비딘 벤알리 정권이 쫓겨난 지 꼭 10개월 만이다.
제헌의회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한 온건 이슬람주의 정당인 ‘엔나흐다’의 라시드 간누시 대표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알라(신)께, 그리고 오늘의 역사적인 날을 증언할 수 있도록 싸우다 죽은 모든 순교자와 부상자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제2당으로 연정에 참여한 공화회의당의 몬세프 마르주키 대통령 지명자도 “거짓과 위선이 판치던 곳이 진정한 민의의 전당으로 거듭났다. 경외심에 사로잡힌다”고 밝혔다.
제헌의회는 이날 엔나흐당의 하마디 제발리 총리 지명자와 마르주키 대통령 지명자를 공식 인준했다. 의회 의장에는 제3당으로 연정에 참여한 좌파 성향 에타카톨당의 무스타파 벤 자파르 대표가 표결로 선출됐다. 제헌의회는 앞으로 새 헌법을 제정하고, 총선을 통해 정식 민주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튀니지 민주주의의 산파 구실을 하게 된다.
의사당 밖에선 민주화 시위 유가족과 부상자 등 1000여명의 시민이 “우리는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다” “국민은 새로운 혁명을 원한다” 등의 문구를 쓴 펼침막을 들고 평화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12월 제 몸을 불살라 아랍의 봄에 불을 붙였던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어머니도 거기 있었다.
아랍권에서 이슬람주의 정당이 총선에 승리한 것은 2006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이후 처음이다. 서방뿐 아니라 튀니지의 세속주의 정치세력 가운데 이슬람정당의 집권으로 자유주의적 인권이 제약받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엔나흐다당의 간누시 대표는 “이슬람이 ‘테러, 광신주의, 극단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적대감’ 따위의 동의어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회의 모델을 건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