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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권력욕’ 드러낸 이집트 군부에 시민분노 폭발

등록 2011-11-21 20:41수정 2011-11-22 09:35

[뉴스분석] 총선앞 유혈충돌…민주화 최대 위기
군부 정치개입 열어놓은 개헌안 초안이 도화선
 모든 혁명은 ‘반혁명’의 위협에 취약하고 불안하다. 지금 이집트 혁명이 그렇다.

 9개월 전 이집트 민주화 시위의 진원지였던 카이로 타흐리르(해방) 광장 등 이집트 전역에서 군부의 완전 퇴진을 요구하는 수만명의 시민과 시위진압 군경의 유혈충돌이 21일(현지시각)로 사흘째 이어지면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카이로 뿐 아니라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시나이 반도 등 다른 지역까지 반군부 시위가 확산되면서, 오는 28일 민주화로 가는 첫 총선을 앞둔 이집트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집트 당국은 21일 관영 <메나>(MENA) 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지난 19~20일 타흐리르 광장과 다른 여러 지역의 사망자 수가 22명에 이른다”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이날 주검안치소 관리의 말을 인용해 사망자가 35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부상자는 정부 집계로만 1700명이 넘는다.

 군과 경찰이 고무총탄과 최루탄을 쏘고 마구 진압봉을 휘둘렀다는 증언도 잇따른다. 일부 시위대는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맞섰다. 지난 2월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축출 이후 최악의 사태다. 

 과도정부인 최고군사위원회는 “선거는 예정대로 치러질 것이며, 당국은 치안을 보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당수 정당이 선거 유세를 중단하는 등 민정이양 일정은 출발부터 차질을 빚을 조짐이다. 과도정부의 에마드 아부가지 문화장관은 21일 “타흐리르 광장 시위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방식에 항의해” 사표를 제출했다고 이집트 관영 <메나>(MENA) 통신이 전했다.

 20일 카이로 시위에 참가한 대학생 아므르 와기(21)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망할 선거 따위보다 ‘타흐리르 광장’이 먼저”라며 “우린 선거에 앞서 ‘절반의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최고군사위의 장군들은 무바라크의 잔당들이며 모조리 쓸려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월 이집트 혁명이 독재정권 대 시민사회의 대립에 군부가 중립을 지킨 구도였던 반면, 지금은 군부와 범시민사회가 대립하는 모양새다. 올해 초 거리시위에 소극적이었던 이슬람주의 세력도 이번엔 정치적 경쟁자이자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진보·자유주의 세력과 적극 연대하고 있다.

 이집트의 39개 정당과 야권그룹은 20일 공동성명을 내어, ‘군부와의 협상’이 깨졌다며 “민주주의 수호와 권력이양을 위해 결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반혁명’으로 치닫는 군부의 움직임을 더이상 두고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최근 이집트 최고군사위원회가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장하는 ‘신헌법 기본원칙’을 내놓으면서 촉발됐다. 문제의 개헌안 가이드라인은 군부가 의회의 견제를 받지 않고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을 뿐 아니라, 군부 예산에 대한 감시도 받지 않도록 했다. 또 대통령 선거 이후 민간에 권력을 넘기겠다면서도, 구체적인 일정은 명시하지 않았다.

21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인근에서 ‘군부통치 종식’과 ‘조속한 민정 이양’을 요구하던 시위대가 진압 군경의 고무총탄과 최루탄 발사로 다친 시민을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21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인근에서 ‘군부통치 종식’과 ‘조속한 민정 이양’을 요구하던 시위대가 진압 군경의 고무총탄과 최루탄 발사로 다친 시민을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 민중의 정치적 권리의식과 기대치는 급속히 높아졌다. 반면, 군부의 관리내각인 최고군사위원회는 민주정부로의 권력이양 약속과 이행을 질질 끌면서 시위대에 대한 체포, 구금, 군사재판 등 인권탄압을 지속해 시민사회의 불신과 불만을 키워왔다.

 일부에선 지금의 시위가 통제되지 않을만큼 격화돼 군부가 무력진압에 나서는 ‘제2의 이집트 혁명’이 벌어지는 시나리오까지 점친다. 의료봉사에 나선 의사 타리끄 살라마는 <뉴욕타임스>에 “지금 사태는 우리 모두가 예감했던 한계점이다. 무바라크 축출은 ‘워밍업’이었을 뿐, 지금이 진짜 결전이다”고 말했다.

 이집트 대선 주자들도 한목소리로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과 함께 ‘신속한 권력이양’을 촉구했다고 이집트 일간 <알마스리 알윰>이 전했다.

 모하메드 엘바라에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시위 진압군이 과도하고 야만적인 폭력을 행사했다”고 비난했다. 아무르 무사 전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총선과 대선 일정에 따라 모든 정치일정이 2012년말까지는 이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정당 후보인 함딘 사바히 의원은 “지금의 과도내각을 해체하고 모든 정파와 행정기구가 참여하는 ‘구호 정부’를 구성하라”고 요구했다.

 기로에 선 이집트 혁명은 ‘아랍의 봄’의 앞날에 중대한 이정표로 주목받고 있다. 재스민 혁명으로 ‘아랍의 봄’에 불을 붙였던 튀니지는 지난달 제헌의회 선거에서 온건 이슬람 정당이 제1당으로 떠오르며 과도정부 구성에 착수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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