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의 새벽’ 작전
나토 공·해군, 주요 군사기지 폭격
반군들 때맞춰 지상공격 도심 장악
시민들 거리 나와 깃발 흔들며 환호
나토 공·해군, 주요 군사기지 폭격
반군들 때맞춰 지상공격 도심 장악
시민들 거리 나와 깃발 흔들며 환호
“트리폴리가 파괴되고 있다. 그(적)들이 오고 있다. 집에서 나와 반역자들과 싸우라. 서둘러라. 모든 가정과 부족들은 트리폴리로 가라.”
21일 오후(현지시각) 독재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리비아 국영텔레비전 방송의 전파를 탔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지도자는 이날에만 세차례나 한 음성메시지로 지지자들에게 최후의 결사항전을 촉구했다. 무사 이브라힘 정부 대변인도 “우리는 여전히 강하다. 우리에겐 싸우는 것 말고는 물러설 곳이 없는 수십만 전사들이 있다”며 저항을 독려했다고 영국 <가디언> 등이 22일 전했다. 그만큼 상황은 급박했다. 카다피 정권의 급박함은 그들의 운명이 종막에 이르렀음을 고백하는 비명이었다.
리비아 반군은 22일 수도 트리폴리의 주요 거점들을 장악했다. 20일 밤 트리폴리의 별칭(인어)을 따 ‘인어의 새벽’으로 명명된 트리폴리 진공 작전을 개시한 지 이틀 만에 카다피 정권이 사실상 몰락한 것이다. 내전은 예상보다 길었지만, 끝나는 건 순간이었다. 권력은 그보다 훨씬 길었으나 무너지는 건 허망했다.
별다른 저항 없이 트리폴리 진입에 성공한 반군은 21일 새벽 트리폴리 동북부 옛도심의 녹색광장을 점령했다. 녹색광장은 반군이 흔드는 왕정시대 리비아 국기들과 승리의 함성, 반군을 반기는 주민들의 환호성, 공중에 쏘아대는 자축의 총성으로 뒤덮였다. 비슷한 시각, 나토군 공군기들은 트리폴리 중심가에 위치한 카다피의 요새화된 관저를 맹폭했다. 트리폴리 서부 외곽인 타주라와 파슐룸에서도 카다피 치하에서 숨죽이던 시민들이 봉기해 반군과 합류했다.
이탈리아 식민지 시절 조성된 녹색광장은 2차 대전 뒤 독립광장으로 불리다가 1969년 카다피가 무혈 쿠데타에 성공한 뒤 ‘녹색광장’으로 개칭된 상징적인 장소다. 트리폴리의 한 시민은 22일 <아에프페>(AFP) 통신에 “우리 모두는 독재자에게서 무기를 제거하길 원한다”며 “여기 있는 모두가 전사다. 이곳에서 카다피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흐메드 지브릴 반군 대변인은 21일 “‘인어의 새벽’ 작전은 “반군 중심 기구인 과도국가평의회와 나토의 ‘공동작전’”이라고 밝혔다. 사전에 치밀하게 조율된 작전이란 얘기다.
반군은 지난주 트리폴리 인근의 가르얀·즐리탄·자위야 등 전략거점들을 잇따라 점령하면서 수도 진격을 준비해왔다. 그리고 20일 밤 트리폴리 동부와 서부 양쪽의 육로뿐 아니라 북부 지중해 해안에서 트리폴리 항만으로 상륙해 3방향 협공을 개시했다. 하늘에선 나토 공군기들이 공습 지원에 나섰다, 문자 그대로 육·해·공 입체작전이었다.
나토군은 지난 3월 ‘민간인 보호’라는 명분 아래 리비아 사태에 개입한 이래 사실상 리비아 반군을 측면 지원해왔다. 지금까지 2만여차례의 출격(소티)과 8500차례의 공습으로 카다피 정부의 정보·보안기구들과 군기지, 탱크 등 890개의 목표물을 파괴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리비아 정부군과 카다피 친위군은 한밤의 전격 공세에 대응하지 못한 채 패퇴하기 급급했다. 카다피 관저인 밥 알아지지야 주변을 비롯한 시내 곳곳에선 여전히 카다피 친위군이 반군과 산발적인 교전을 벌이고 있지만 대세를 뒤엎긴 역부족이다.
카다피 정권의 몰락은 리비아 정부가 나토의 공습을 피해 피난 정부를 꾸렸던 트리폴리 도심의 릭소스 호텔에서도 감지됐다. 리비아 사태 내내 전세계 외신기자들이 머물면서 기사를 타전하고 카다피 정부 대변인과 만나던 바로 그 호텔이다. 그러나 20일 밤 이곳에서도 격렬한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으며, 다음날에는 카다피 정부 각료들의 가족들과 통역자들이 짐을 꾸려 호텔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고 영국 <비비시>(BBC)가 전했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최근 나토군이 트리폴리 주변의 카다피 부대들에 대한 상시적인 탐지·추적·공격 등 작전을 수행해 나토 공습의 정확성을 높였고, 이를 통해 공습 지원을 강화해 전세를 뒤집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프랑스·영국·미국 등의 군사 개입은 유엔 안보리의 리비아 결의안을 넘어선 것이라는 비판이 거셌고, 이는 반군 세력의 앞날과 맞물려 두고두고 논란이 될 전망이다. 조일준 이정애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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