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경제재건에 급한 돈…“서방 구제금융은 거부감 커”
민주화 혁명을 진행중인 이집트가 경제 재건 과정에서 서방이 주도하는 국제금융기구들의 구제금융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미르 라드완 이집트 재무장관은 25일 성명을 내어 “지금 단계에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의 어떠한 차관도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라드완 장관은 이번 결정이 이집트 과도정부인 최고군사위원회가 기업인 및 시민사회 대표들과 협의를 거쳐 ‘2011~2012 예산안’의 재정적자 폭을 애초 국내총생산의 11%인 1700억 이집트파운드(약 30조8100억원)에서 8.6%인 1340억 이집트파운드로 감축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5일 이집트는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3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자금을 융자받기로 합의했으나, 이번 결정으로 백지화됐다.
이집트 과도정부는 올 3분기에 일자리 창출과 빈곤계층 지원을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리기로 하고, 부족한 재정은 소비세 인상과 연료보조금 삭감으로 일정 부분 충당키로 했다. 당장 필요한 막대한 재건자금은 아랍 지역의 부유한 산유국들로부터 무상차관이나 융자로 지원받을 방침이다. 라드완 장관은 최근 카타르가 재정지원금 5억달러를 “선물”로 주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도 비슷한 규모의 금액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집트 당국의 구제금융 거부 조처가 항구적인 정책 방향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급격한 정치적 변동에 따른 경제난으로 한 푼의 자금도 아쉬운 이집트가 일단은 ‘경제적 자주 노선’을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많은 이집트인들은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그 기구를 ‘제국주의의 도구’로 비판해온 이집트 민주화 운동에 대한 배반으로 여긴다”고 전했다.
이집트 정부는 호스니 무바라크 통치 30여년 동안 극심하게 왜곡된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를 바라는 민심과 현실적인 재원 압박 속에서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어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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