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도중 실종…한달만에 발견
처참한 고문흔적에 ‘시민 분노’
정부 잇단 유화책도 무용지물
처참한 고문흔적에 ‘시민 분노’
정부 잇단 유화책도 무용지물
비오는 날이면 소년은 친구들과 밭둑 옆 수로에 첨벙 뛰어들었다. 가물 때는 자신이 키우는 비둘기들과 놀았다. 가난한 흙벽돌집에 살았지만 더 가난한 이웃에게 100시리안파운드(약 2200원)를 주자고 아버지를 졸랐다. “우리에겐 너무 큰 돈이란다.” “전 침대도 있고 먹을 것도 있지만, 저들은 아무 것도 없잖아요.”
시리아 남부 다라 인근의 시골마을에 살던 13살 함자 알카티브는 지난 4월29일 주민들의 반정부 민주화 시위대열에 함께 있다 실종됐다. 아무도 그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한 달 뒤인 지난달 24일, 알카티브의 부모는 참혹한 모습으로 돌아온 아들의 주검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아들은 목이 부러지고, 성기는 잘렸으며, 온몸에 고문 흔적이 뚜렷했다. 여린 몸을 관통한 총알 구멍도 여럿 있었다.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지난 31일 알카티브가 시리아 보안군의 총격이 시작된 직후 시위 현장에서 체포된 50여명에 섞여있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전했다.
그의 처참한 죽음은 시리아 민중혁명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다. 다정다감했던 시골소년은 ‘모든 이의 순교자’, ‘시리아의 부아지지’로 부활하고 있다. 부아지지는 올초 ‘튀니지 혁명’의 기폭제가 됐던 분신 청년의 이름이다. 석달째 반정부 시위를 이어온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우리 모두가 함자 알카티브”(We Are ALL Hamza Al-khateeb)란 이름으로 개설된 인터넷 페이스북엔 추모와 분노, 지지를 표시하는 댓글들이 6만개를 넘어섰다. 탱크를 앞세워 시위대를 무차별 학살해온 바샤르 아사드 정권은 바짝 긴장하며 유화책을 쏟아내고 있다.
시리아 정부는 1일 소년의 ‘고문 치사설’에 대한 전면적 진상조사 방침을 발표했다. 알카티브가 시위 중 치명적 총상으로 숨졌으며 신원 파악이 안돼 주검 인도가 늦어졌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앞서 지난 31일 시리아 국영텔레비전은 “알카티브의 주검에서 고문 흔적은 못봤으며, 주검의 훼손은 사후 부패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부검의의 소견을 방송했다. 하지만 이들의 말을 믿는 시민은 거의 없다.
아사드 대통령은 1일 정치범 500여명을 석방하고 야권이 참여하는 ‘국민 대화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시리아 보안군은 바로 이 날도 중남부 라스탄과 탈비세 등 2곳에 시위대에 공습과 포격을 퍼부었다. 현지 인권 변호사 라잔 자이투나는 “지난 31일~1일 이틀 동안만 이 지역에서 네살배기 소녀를 비롯해 최소41명이 숨졌다”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지금까지 남부 다라 지역에서만 최소 418명이 숨지는 등 시리아 민주화 시위 석달새 사망자가 1100명을 넘어선 것으로 현지 인권단체들은 집계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일치 사설에서 “바샤르가 자기 아버지의 진정한 아들임을 증명해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바샤르 아사드 현 대통령의 아버지이자 전임 대통령인 하페즈 아사드는 1982년 중부 하마 지역에서 반정부 봉기를 일으킨 수니파 무슬림을 2만~4만명이나 학살한 바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1일 “일찍이 이런 끔찍함을 본 적이 없다”는 제목의 시리아 인권 보고서를 발표했다. 시리아 보안군이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 체포와 고문, 살해를 자행하고 응급치료와 언론 취재도 차단하고 있다며, 반인도주의 및 전쟁범죄에 대한 유엔의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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