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간 남자 접촉할까봐 금지
SNS에 운전 영상 올린 여성
불법 운전 혐의로 경찰 체포
시민 불복종 운동 번지는 중
SNS에 운전 영상 올린 여성
불법 운전 혐의로 경찰 체포
시민 불복종 운동 번지는 중
“여성들에게 운전을 허하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 운전이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 확보를 위한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사우디 당국은 주동자 여성을 체포하는 등 강경책으로 맞서고 있다. 이슬람 교조주의와 근대적 시민의식이 맞붙는 모양새다.
사우디 종교경찰은 21일 마날 알셰리프(30)라는 여성을 ‘불법 운전’ 혐의로 21일 체포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사우디 인권 활동가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셰리프는 최근 자신이 운전하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인터넷 소셜네트워크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올렸다. 그는 동영상에서 “(내 행동은) 사우디 여성들이 운전을 배우도록 돕기 위한 자발적 캠페인”이라며 “최소한의 비상 상황에도 신은 (여성 운전을) 금지한다. 누군가 심장 발작이라도 일으키면 누가 운전해주나?”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즉각 셰리프의 페이스북 계정을 차단했다. 사우디는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의거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 운전을 금지하고 있다. 여성 참정권도 엄격하게 제한된다. 여성이 가족이 아닌 바깥남자들과 접촉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셰리프는 몇 시간 뒤 풀려났으나 석방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랍 민주화운동의 물결에 영감을 받은 일군의 사우디 여성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운전을 가르쳐주세요’(Teach me how to drive so I can protect myself)라는 페이스북 계정을 신설해 여성운전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홍보하고 나섰다. 나아가, 오는 6월17일에는 여성들이 거리로 차를 몰고 나오자고 제안했다. 경찰이 제지하거나 심문하면 순순히 응하고, 엄격한 이슬람 복식도 준수하자고 했다. 철저한 준법투쟁과 평화적 불복종 운동의 병행 전술이다.
이들은 페이스북에 “우린 운전자에게 속박된 모욕감에서 벗어나 완전한 시민으로 살고 싶다. 우린 법을 위반하거나 당국에 도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여기 모였다”고 썼다. 현재 이 페이스북 페이지엔 ‘운전시위’ 동참을 약속하는 사우디 여성들의 댓글들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뜨거운 격려 메시지들이 올라오고 있다.
사우디에선 여성들이 외출하기 위해선 한 달에 300~400달러를 주고 운전자를 고용하거나 친척 남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출근이나 쇼핑은 물론, 병원에 가야 할 때에도 예외는 없다. 이번 사우디 여성들의 운동이 저소득층 또는 비상시 여성들의 운전권에 우선 초점을 맞춘 이유다.
이에 대한 사우디 당국의 공식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사우디 소유의 범아랍권 위성 텔레비전 방송인 <알아라비야>의 웹사이트에서도 22일 현재 이 문제에 대한 어떤 보도나 논평도 찾아볼 수 없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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