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UN사무소 앞 이틀째 시위…최소 22명 사망
UN “비난받을 사람은 목사”…파키스탄으로 확산 우려
UN “비난받을 사람은 목사”…파키스탄으로 확산 우려
미국의 한 목사가 이슬람 경전 쿠란(코란)을 불태운 행위가 아프가니스탄에서 20여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등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달 20일 테리 존스라는 기독교 극단주의 목사는 플로리다주 게인즈빌에 있는 자기 교회에서 모의재판을 열어 유죄 선고를 한 다음 쿠란을 불태웠다. 지난해 9월 쿠란 소각을 예고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그는 당시엔 계획을 접었지만 이번엔 ‘반인도주의 범죄’라는 명목의 재판을 강행했다.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와 주변 지역에서는 3일 이에 격분한 수백명이 사흘째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폭발 등의 원인으로 2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다. 반대 시위는 동부로도 번져, 잘랄라바드에서는 수백명이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뜻하는 허수아비를 불태웠다. 전날 칸다하르에서는 수천명이 유엔사무소에 몰려가 항의하던 중 총격으로 유엔 직원과 시위대 등 10명이 숨지고 80여명이 다쳤다. 1일에도 북부 마자르이샤리프에서 2000여명이 유엔사무소를 공격해 유럽 출신 유엔 직원과 네팔 출신의 경비원 등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사무소 피습 사건을 “가장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프간 주재 유엔대표부의 스타판 데 미스투라 특별대표는 “아프간인 누구도 비난해선 안 된다고 본다. 유일하게 비난받을 사람은 쿠란을 불태운 당사자”라며 “이번 일로 아프간에서 유엔의 활동이 중단되진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일 “쿠란을 포함한 어떤 경전에 대한 소각도 극단적 불관용과 편협함에서 비롯한 행위,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도 인간 존엄성에 대한 폭력”이라며 양쪽을 함께 비난했다.
이번 시위가 극단적인 폭력으로 치달은 것은 외부의 테러리스트의 소행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미스투라 유엔 특별대표는 2일 기자회견에서 “7~15명 정도의 무장세력이 마자르이샤리프 지역의 시위대에 잠입했으며, 그들은 권총을 갖고 있었다”며 “살해된 동료(유엔 직원) 3명도 모두 권총에 맞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출신의 사무소장은 현지 방언을 구사하며 무슬림으로 가장해 목숨을 건졌다.
‘쿠란 소각’ 행위는 이슬람 전체의 자존심을 화형시킨 것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큼 민감한 문제다. 쿠란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서기 620년 유일신 알라의 첫 계시를 받은 이래 632년 타계할 때까지 혼자서 집필한 계시록이다.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점일획도 달라지지 않았고, 외국어 번역본도 반드시 아랍어 원문과 함께 실을 정도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쿠란은 무슬림들에게 ‘존재감의 상징’이라고 할 만큼 절대적 지위를 갖고 있다”며 “쿠란 소각은 종교에 대한 모독을 넘어 무슬림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영적 살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2005년 덴마크 신문에 실린 무함마드 만평이 무슬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사건 이상으로 폭발성을 지닌 것이다.
특히 아프간은 현재 미국의 침공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죽어가고 있는 전쟁 상황이어서 서방에 대한 적개심이 유난히 강하다. 이희수 교수는 “미국의 침공으로 8년째 고통을 겪고 있는 아프간인들에게 ‘미국 목사=미국 정부=서구 열강=유엔’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며, 항의 시위가 파키스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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