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악몽’ 우려 몇가지 혁명사례 비교하다
‘군부가 민주화 주도→친미노선’ 눈여겨 봐
미 언론 “미, 이슬람주의=악마 등식 버려야”
‘군부가 민주화 주도→친미노선’ 눈여겨 봐
미 언론 “미, 이슬람주의=악마 등식 버려야”
이집트 시위 기간 내내 1979년 이란 혁명의 악몽이 되풀이되는 것을 우려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시위 발생 직후부터 친미 독재자를 몰아냈지만 이란과 다른 길을 걷게 된 인도네시아 모델에 주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와 <월스트리트저널>은 13일(현지시각) 백악관이 20세기 후반 민주화혁명을 통해 미국이 지지하던 독재자들이 축출된 5~6가지 사례들에 대한 비교연구를 진행해 왔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 32년간의 장기 독재자 수하르토를 쫓아낸 1998년 인도네시아의 상황이 이집트와 가장 근접하다는 판단에서 이를 집중 연구해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최대 이슬람국가이자, 지난해 11월 방문 때 독재에서 민주체제로 이행을 격찬한 적이 있는 인도네시아의 상황에 특히 공감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또다른 비교 대상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몰아낸 1986년 필리핀 혁명,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17년 독재를 끝낸 1990년 칠레 혁명 등이었다.
이집트와 인도네시아는 모두 무슬림이 다수인 이슬람국가이면서도 세속주의적 전통이 강하고, 독재정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규모 군사원조 수혜국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퇴진 이후 강력한 군부가 민주화 과정을 주도해 친미노선을 지켜오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우후죽순처럼 출현한 이슬람정당들을 선별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이슬람정당 세력의 득세를 막았고, 세속정당의 등장을 돕기 위해 1년여 동안 총선을 미뤘던 점에 미 행정부가 주목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하지만 오랜 단속과 탄압에 맞서 무장투쟁보다는 사회봉사 등 온건한 노선을 걸어오며 이집트 사회 내에 깊은 뿌리를 내린 것으로 평가되는 무슬림형제단은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정당들보다 훨씬 더 많은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무슬림형제단이 참여했다고는 하나 이집트의 시위가 오히려 다양한 계층의 자유와 사회정의 실현 요구가 분출돼 일어난 ‘서구식 대중혁명’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집트 혁명이 친미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신정체제를 구축한 1979년 이란 혁명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교 분리의 전통을 갖고도 이슬람정당이 집권하고 있는 터키의 경우는 많은 이집트인들이 원하는 체제로 언급되지만 예외적인 사례다.
미 행정부와 미국 언론들의 이런 움직임과 진단은, 이집트 혁명 이후에도 미국이 여전히 친미정권에 의존하는 중동 정책의 기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이제 친미라는 기준 이외의 이 지역 사람들의 민주화 요구 또한 미국이 중동 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2005년 이집트 방문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지난 60년 동안 중동에서 미국은 민주주의를 희생시키고 안정을 추구해왔지만 두 가지 목표에서 다 실패했다”며 올바른 지적을 한 바 있다. 라이스 장관의 이 연설에 주목한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이슬람주의에 대한 미국의 과대망상증이 이슬람근본주의만큼이나 해악을 끼쳤다”며 “이슬람근본주의를 악마로 보는 외교 정책을 그만둘 것”을 제안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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