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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카이로 ‘승리의 경적’…“새 이집트 건설”

등록 2011-02-13 19:23수정 2011-02-13 19:54

[김규원 기자의 이집트 통신]
“빵빵 빵빵빵!”

호스니 무바라크가 떠난 12일(현지시각) 이집트 카이로 시내로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들은 소리는 리드미컬한 다섯번의 자동차 경적이었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인들이 다섯번의 박수를 끝없이 쳤던 것처럼 수많은 운전자들이 타흐리르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 곳곳에서 경적을 울려댔다. 1987년 6월 한국의 택시운전사들이 그랬듯 경적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표현이었다.

택시운전사 미나(23)는 이날 저녁 카이로 람세스 광장에서 타흐리르 광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음악을 최대로 높이고 쉴새없이 경적을 누르며 주변의 운전자들과 큰 소리로 떠들었다. 무슨 이야기냐고 묻자 그는 “지금 사람들이 정말 행복하다. 무바라크가 떠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미래엔 모든 일이 잘될 것이냐고 묻자 “그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현재의 환희는 미래의 불안을 덮고도 남았다.

30년 만에 ‘무바라크 대통령 없는’ 첫날을 맞은 이날, 시위대는 오전부터 민주화 성지인 타흐리르 광장 청소에 나섰다. <에이피>(AP) 통신은 “새로운 이집트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상징”이라고 표현했다. 도로의 펜스를 칠하던 히잡을 두른 소녀들의 옷에는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집트를 건설중입니다”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밝은 표정의 시민들은 밤늦게까지 자유의 공기를 만끽했다. 이날 밤 나일강가에서 아내와 아들딸을 데리고 산책하던 이브라힘(48)은 “무바라크가 떠난 것을 가족과 함께 축하하기 위해 나왔다”고 흥분해서 말했다. 역시 가족과 함께 나온 유세프 이스마일 부인도 “앞으로 새로운 지도자들이 부패하지 않는다면 이집트도 한국이나 일본처럼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젊은 시위대의 연합체인 혁명청년연합은 이날 ‘긴급조치법 철폐, 민간인 4명과 군인 1명이 참여하는 과도통치위원회 구성, 의회 해산, 연립정부 및 개헌위원회 구성’이라는 요구조건을 명문화한 첫 성명을 발표하며 “혁명은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상시시위 체제를 매주 1차례로 전환하길 촉구했지만, 타흐리르 광장에선 시위대 캠프 철수를 놓고 사람들 사이에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이전보다 4시간 늦어진 0시 통금이 시작됐지만 13일 새벽 2시에도 타흐리르 광장엔 수만명이 남아 있었다. 원형 교차로에 쳐놓은 천막들도 그대로였다. 이스마일리아 하우스 호텔 앞에서 사람들은 흐느끼는 듯한 아랍풍 노래를 고막이 터져라 틀어놓고 국기를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정치집회이자 무도회인 묘한 행사였다. 히잡을 두른 여성들도 무대 위아래에서 남성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광장 북서쪽에서는 이번 시위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이 담긴 펼침막을 걸거나 들고 여전히 정부를 규탄하고 있었다.

카이로에서 얼핏 혼란스럽게 보이는 상황이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될지, 아니면 나라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것은 이집트 시민들과 군부 사이 어디에선가 결정될 것으로 보였다. 카이로/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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