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바라크정부 개혁안 놓고
“기만책”-“시위목적 충족”
“기만책”-“시위목적 충족”
개헌위원회 구성을 포함한 이집트 정부의 잇단 양보 조처가 시위대와 야권에 진로를 둘러싼 고민과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강경파와 온건파의 입장 차이가 본격화하는 것이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건재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을 내세운 뒤 나서지 않을 것 같던 무바라크 대통령은 8일(현지시각) 이틀 전 술레이만 부통령과 야권의 대화에서 나왔던 개헌위원회 구성을 승인하고, 총리로 하여금 야권과 결정사항을 이행할 후속위원회를 꾸리도록 지시했다. 전날엔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공무원 급여 15% 인상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집트 노동력의 4분의 1인 600만명에 달하는 공무원들의 인심을 얻으려는 조처다. 그는 또 지난해 말 총선에 대한 부정 시비를 조사하고, 독립된 위원회를 꾸려 최근 시위 진압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퇴진 압력에 처해 있는 대통령이 개혁을 이끄는 듯한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국영 텔레비전은 다시 전면에 나선 무바라크 대통령의 모습을 중계하고 나섰다.
외신들은 무바라크 대통령이라는 ‘뱀 머리’가 제거되지 않은 데 대해 야권에서 상반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매일 수천~수만명이 모이던 타흐리르 광장의 열기는 조금 꺾인 모습이다. <가디언>은 24시간 현장을 떠나지 않는 ‘광장 사수파’는 1000여명 수준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정부가 야권 대표들과의 회담에서 개헌위원회 구성 등의 양보 조처를 내놨고, 무바라크 대통령이 9월에 물러나는 게 확실하다면 시위의 목적은 어느 정도 충족됐다는 게 광장을 떠나는 이들의 입장이다.
반면 일련의 양보 조처를 타협책이 아니라 기만책이라고 보는 시위 주도 세력은 광장을 다시 꽉 차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시위 주도자들과 무슬림형제단 등 야권 단체들은 하나같이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퇴진이라는 요구를 접지 않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7일 “핵심 요구인 무바라크의 퇴진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정부와의 협상을 거부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 내부에서도 입장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 지도자 중 한 명인 무함마드 사드 엘카타트니는 “대통령의 퇴진을 원하지만 지금 당장은 (정부와의) 합의를 받아들인다”며 신축성 있는 태도를 보였다. 반면 지도부 일각에서는 “무바라크가 지금 물러나야 한다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대화의) 핵심 조건”이라는 주장도 여전하다.
무바라크가 8일 정부와 야권의 2차 협상을 앞두고 잇단 민심 달래기 대책을 내놓은 가운데, 이 추가 협상 결과도 야권과 시위대의 진로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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