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이집트와 1998년 인도네시아 상황 비교
반정부시위→군이 야권과 협상→선거실시
이슬람국·장기독재·미국과 동맹도 공통점
지도자 없는 시위…새로운 혁명의길 관측도
이슬람국·장기독재·미국과 동맹도 공통점
지도자 없는 시위…새로운 혁명의길 관측도
[민주화 진통 겪는 이집트]
이집트 시위 사태가 1998년 인도네시아의 반정부 시위 양상을 닮아가고 있다.
이집트 사태는 6일(현지시각) 정부와 야권이 개헌에 합의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대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는 급격한 정치적 변동을 초래했던 이란혁명(1979년)이나, 니콜라에 차우세스쿠 대통령을 처형한 루마니아 등 20세기 초 동구에서 일어난 색깔혁명, 가장 최근의 튀니지 재스민 혁명과도 다른 양상이다.
최근의 이집트 상황은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의 12년 전과 상당히 닮았다. 두 나라는 모두 무슬림들이 다수인 이슬람국가이면서도 세속주의적 전통이 강하고, 독재정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으로 오랫동안 군사원조를 받아오던 나라들이다. 강력한 군부가 정치·경제를 좌우하는 핵심세력으로 시위 이후 정치개혁 협상을 주도하고 정국 안정의 보루가 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해 32년 독재를 해오던 수하르토 대통령은 1998년5월 아시아 금융위기 와중에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유혈진압했다가 시위 10일 만에 사임했다. 당시 1200여명이 시위과정에서 숨졌다. 수하르토의 대리인인 하비비 부통령이 군부와 미국의 지지 속에 권력을 승계해 야권과의 협상을 통해 장기적인 민주화 과정을 거쳤다. 간접선거를 통해 1999년과 2001년 두차례 대통령이 뽑혔고, 2004년에야 최초로 대통령직선제가 실시돼 군 출신인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 당선됐다. 이집트에서도 군부의 지지를 받는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 야권과의 정치개혁 협상에 나서고 있다. 수하르토가 즉각 퇴진한 반면, 무바라크는 눌러앉아 있다는 점은 다르다. 수하르토의 경우 미국이 즉각 퇴진을 촉구했지만, 무바라크의 경우에는 미국이 애초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가 과도정부를 통한 점진적인 권력이양으로 입장을 선회한 탓이다. 군부가 수하르토나 무바라크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고, 거리를 두고 있을 뿐이라는 점은 공통점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시위 주도세력은 장기독재에 억눌렸던 민주화 욕구의 폭발이란 혁명적 호기를 맞고도 군부 등 기득권세력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그 이유는 오랫동안 탄압받은 결과 국민대중의 민주화 요구를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실현할만한 수권능력을 갖춘 강력한 야당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아직 유동적이긴 하지만 이집트 반정부 세력들의 판도도 인도네시아의 상황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의 톰 말린코프스키는 “이집트에서 정치적 자유가 회복되면 인도네시아처럼 과도기간 동안 강력한 군부가 안정 유지를 담당하면서 보다 중도적인 정당들의 출현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집트 상황이 인도네시아의 길을 따를 것이라고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영국의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이집트 상황을 ‘로제타혁명’으로 명명하면서, 지도자 없이 대중자발적으로 일어난 평화적이고 세속적인 반정부 시위라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고대 상형문자 해독의 길을 연 로제타스톤처럼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는 이전과는 판이한 새로운 혁명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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