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군대 광장서 여전히 대치
13일째 시위로 지친 기색 뚜렷
카이로 공항·은행은 일상 회복
13일째 시위로 지친 기색 뚜렷
카이로 공항·은행은 일상 회복
6일 오전(현지시각), 이집트 카이로 공항에선 혼란도, 혁명의 기운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지방공항 정도 규모의 카이로 공항은 일상을 회복한 듯했다. 실제 이슬람권의 평일이 시작되는 일요일인 이날, 최근 문을 닫았던 카이로 시내 은행들도 문을 열기 시작했다. 경유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새벽에 잡아탄 비행기에 통틀어 30여명 남짓한 승객들이 카이로 상공에서 느꼈던 불안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하지만 카이로 도심의 타흐리르 광장은 달랐다. 문자 그대로 ‘해방공간’이 된 타흐리르(해방) 광장에는 밤을 꼬박 새운 시민들과 이들이 쳐놓은 바리케이드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엔 탱크와 장갑차 등이 깔려 군대들의 경계가 강화돼 긴장감이 흘렀다. 광장 근처 호텔도 정문이 굳게 닫혀 겨우 사람 하나 드나들 옆문으로 들어가니, “보안이 강화됐으니 이해해달라”는 외국 언론인 대상 안내문부터 눈에 띈다.
이날 낮 진행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야권세력의 대화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시위대는 오후에 다시 결집하기 시작했다. 13일째 계속된 격렬한 시위와 극도의 긴장, 사복경찰들의 체포, 친정부 세력과의 대규모 유혈충돌이 잇따르면서 지친 기색이 뚜렷했지만 시위대는 한목소리로 “(무바라크는) 떠나라, 떠나라, 떠나라”는 구호를 외치고, 이집트 국기를 흔들고, 시민들의 즉석연설에 함성과 박수를 보내며, 엷은 불안감을 떨치고 결의를 다졌다.
시위대는 전날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집권 민족민주당(NDP)의 지도부를 대거 퇴진시킨 데 대해 냉담한 반응이었다. 무바라크의 아들이자 정책위원회 위원장인 가말과 사프와트 엘셰리프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새 사무총장 겸 정책위원회 의장에는 야권과도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내과의사 출신 정치인 호삼 바드라위가 임명됐다. 그러나 시위대들은 “무바라크의 즉각 퇴진이 없는 어떤 조처도 화장술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날 시위 현장에 나타난 하산 엘루에이니 장군 등 이집트 군부 지도자들은 “당신들에겐 의사를 자유로이 표현할 권리가 있지만 이집트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달라”며 바리케이드 철수 등을 호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 시위대가 “무바라크가 떠나지 않는 한 우리는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듯 그 어떤 협상안도 현재로선 시위대가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태세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9월 대선 때까지 남은 임기를 마치겠다는 태도다. 5일 경제부처 장관 회의를 주재한 것도 이런 의지를 안팎에 거듭 과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는 사복 차림의 경찰과 보안기구 요원들도 상당수 깔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언론인들인 외국인들은 광장에 모인 이집트 시민들에게 개별적으로 말을 붙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앞서 5일 필자가 카이로에 들어가기 위해 경유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에서도 유럽의 탑승객들은 이집트 상황을 전하는 <시엔엔>(CNN) <스카이뉴스> 등의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40대 백인 남성인 공항 셔틀버스 운전사는 필자가 카이로에 간다고 하자 두 차례나 “정말이냐”고 되물은 뒤 “이집트 상황이 매우 혼란스럽지만 큰 변화가 진행중”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무바라크 정권이 이집트 시위대를 진압하고 (사태를) 되돌려놓을 가능성도 조금 있어 걱정된다”며 “몸조심하고, (취재와 보도에) 성공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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