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최대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이집트 카이로에서 시위대들이 눈과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진압경찰이 쏜 최루가스를 피하고 있다. 카이로/AP 연합뉴스
이집트 전국 도심에서 “무바라크 물러나라”
시위대 집권당사에 ‘불’ 경찰맞서 격렬 저항
시위대 집권당사에 ‘불’ 경찰맞서 격렬 저항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에 고무된 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28일 군이 투입되는 사태로 발전하면서 이집트 상황은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시위 4일째인 이날 호스니 무바라크(83) 대통령은 경찰력만으로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를 막을 수 없게 되자 군의 투입을 요청하고 오후 6시부터 다음날 7시까지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수시간 뒤인 이날 밤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내각을 해산하고 24시간 내에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내각 개편이 시위대의 요구를 만족시키기보다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이번 대규모 반정부시위의 타격대상은 내각이 아니라 무바라크 자신이기 때문이다. 무바라크 역시 역사적으로 많은 독재자들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샘이다.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이 모든 상황은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을 사흘간 조용하게 지켜보던 군부가 마침내 전면에 나서게 됐고, 군의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담낭제거수슬을 받은 노쇠한 무바라크의 국정 장악력을 더욱 약화되고, 군부가 무바라크와 이집트의 장래에 대해 보다 많은 결정권을 갖게 되는 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군부도 자신도 한 축을 맡고 있는 정권의 붕괴보다는 질서있는 정권승계쪽에 염두를 두고 무바라크의 연설 내용에 인단은 타협한 것처럼 보인다.
46만8천명 병력을 거느린 이집트 군부는 1952년 왕정을 무너뜨린 가말 나세르 등 청년장교단의 군사쿠데타 이래 지난 반세기동안 정권의 중심축을 맡아왔다. 초대 대통령 무하마드 나기브, 나세르, 사타트, 무바라크로 이어지는 4명의 대통령 모두 군 출신이다. 최근 군부의 위상이 많이 약화됐다는 지적도 없진 않지만, 매년 13억달러의 미국 군사지원을 받는 이집트 군부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고 여전히 이집트 정치의 파워브로커이다. 군부내 원로그룹들은 지난해부터 둘째아들 가말(47)에게 권력을 세습하려는 무바라크의 계획에 반기를 들고 군출신을 후계로 지명하라는 압력을 행사해 왔다.
군 투입과 통금확대를 통해 군부는 무바라크에게 이런 요구를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명분을 얻게 됐다. 권력의 한축을 맡아온 이집트 군부는 판을 완전히 뒤엎는 것보다는 군부내에서 대안적 인물을 내세워 질서있는 지도자 교체와 일정정도의 민주화 요구 수용 등의 양보조처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 노무라은행의 최근 보고서에서 “이집트 군부가 필요하다면 질서있는 지도부교체를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지만, 정권 자체를 완전히 뒤엎는 식으로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변화에 이집트의 최대 동맹국인 미국도 동의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위 발생 직후 워싱턴을 방문한 사미 아난 군참모총장이 이끈 이집트군대표단은 미 행정부와 군부의 이런 역할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미 행정부는 폭력적인 시위진압 자제와 정치개혁을 통해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할 것을 이집트 정부에 촉구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중동 최대 동맹국이자 중동평화회담의 축인 이집트의 반미화와 불안정 상황은 미국의 중동정책의 전면적 수정을 불가피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집트의 순조로운 정권교체와 민주화는 미국의 이익과도 합치하는 면이 있다. 아난 참모총장은 29일 귀국할 예정이며, 군부의 2차대응은 그 이후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런 분석과 전망은 가설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가장 큰 변수는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현장이다. 대선 출마의사를 보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귀국해 시위에 동참하고, 최대야권세력인 이슬람형제단이 처음으로 시위에 참가하면서 군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대규모 시위로 발전됐다. 이미 여당 당사가 불탔고, 시위대가 일부 정부청사와 방송국에 진입을 시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야간에 경찰병력을 대신해 시가지에 배치된 군과 시위대간의 충돌은 아직 보도되지 않고 있다. 경찰병력의 강경진압 전술을 채택하지 않고 있는 군은 시위대의 환영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군이 발포를 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급반전될 수 있다. 단순히 식료품값 급등에 반발해 일어났던 1977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당시 시위 때는 강경진압에 나선 군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었지만, 이번 시위는 장기 철권통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표출된 대규모 정치시위라는 점에서 시민혁명으로 발전될 혁명적 파괴력을 갖고 있다. 군 투입에도 불구하고 반정부 시위가 계속 확대된다면, 시위현장에 배치된 군병력들은 발포를 둘러싸고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집트 상황이 23년 독재자 엘아비딘 벤알리 대통령이 해외로 탈출하는 상황으로 발전했던 튀니지의 사례를 답습하게 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튀니지의 경우 시민혁명이 정점으로 치닫던 지난 14일 군부가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벤 알리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면서 대전환이 이뤄졌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야간에 경찰병력을 대신해 시가지에 배치된 군과 시위대간의 충돌은 아직 보도되지 않고 있다. 경찰병력의 강경진압 전술을 채택하지 않고 있는 군은 시위대의 환영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군이 발포를 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급반전될 수 있다. 단순히 식료품값 급등에 반발해 일어났던 1977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당시 시위 때는 강경진압에 나선 군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었지만, 이번 시위는 장기 철권통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표출된 대규모 정치시위라는 점에서 시민혁명으로 발전될 혁명적 파괴력을 갖고 있다. 군 투입에도 불구하고 반정부 시위가 계속 확대된다면, 시위현장에 배치된 군병력들은 발포를 둘러싸고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집트 상황이 23년 독재자 엘아비딘 벤알리 대통령이 해외로 탈출하는 상황으로 발전했던 튀니지의 사례를 답습하게 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튀니지의 경우 시민혁명이 정점으로 치닫던 지난 14일 군부가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벤 알리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면서 대전환이 이뤄졌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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