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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이집트 민심 ‘폭발’ 30년 독재 기로에

등록 2011-01-26 19:22수정 2011-01-27 08:15

이집트 아랍 공화국
이집트 아랍 공화국
봇물 터진 반정부 시위
‘재스민 혁명’ 영향권에
정권옹호 미국도 돌변
“민중 열망에 응답해야”
마침내 나일강의 민심도 범람했다.

이집트 시민들이 호스니 무바라크(82) 대통령의 30년 폭압통치에 맞서 26일(현지시각) 이틀째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정부의 집회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수도 카이로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고, 경찰은 최루탄과 곤봉으로 시위대 진압 작전을 벌였다. 튀니지발 ‘재스민 혁명’의 열기가 반정부 시위의 무풍지대였던 이집트에까지 불어닥친 것이다.

앞서 25일 카이로·수에즈·알렉산드리아 등 주요 도시에선 수만명의 시민들이 “독재자 무바라크 축출”을 외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경찰은 최루탄과 고무총탄을 쏘고 진압봉을 휘둘렀으나 역부족이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 3명과 경찰 1명 등 4명이 숨졌다. 이집트 민중은 이날을 ‘분노의 날’ ‘(독재) 종막의 시작’이라고 불렀다. 알렉산드리아에선 수천명이 “혁명! 무바라크에 맞서, 화산 같은 혁명”이란 구호도 터져나왔다. 무바라크 집권 이후 30년째 계엄통치가 시행중인 이집트에서 이런 대규모 시위는 극히 이례적이다.

이날 시위는 전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조직돼, 밤늦도록 이어졌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시위대 수천명이 카이로 도심 의회 앞의 타흐리르(자유) 광장에서 밤샘 시위를 벌였으며, 페이스북에선 음식과 담요를 갖다주자는 격려가 잇따랐다고 전했다. 시민 압드 압달라는 “밤 10시30분이 됐는데도 거리의 함성은 오히려 더 커졌다”며 “잃을 것이라곤 없는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를 원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시민은 “사람들이 튀니지 사례에 고무된 것 같다. 죽을 각오를 한 것처럼 행동한다”고 말했다.

이집트 당국은 ‘불법시위’를 엄단하겠다는 경고에도 시위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자, 트위터를 폐쇄하고 언론까지 통제하고 있다는 현지 보도도 나왔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아들 가말에게 정권을 물려줄 것이란 관측이 나도는 가운데, 일부 시위대는 “가말! 이집트인은 너를 혐오한다고 네 아버지에게 말해라!”라고 외쳤다.

시위가 커지자 이집트의 최대 우방국인 미국도 태도를 바꿨다. 백악관은 이날 저녁 성명에서 “이집트 정부는 정치·경제·사회적 변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에 응답해야 한다”며 무바라크 정권을 압박했다. 불과 몇시간 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이집트 국민과 정부) 양쪽 모두 자제해야 한다”며 “우리는 이집트 정부가 안정돼 있으며 국민의 요구에 응답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평가한다”고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다. <에이피>(AP) 통신은 “힐러리의 논평은 아랍권 핵심 동맹인 전체주의 정권에 대한 어색한 지지였다”고 꼬집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을 중재하는 등 아랍권에서 상당한 위상을 갖고 있다. 친미 무바라크 정권은 미국 중동전략의 파트너다. 아랍권에서 최초로 이스라엘을 인정했으며, 미국으로부터 매년 15억달러의 원조를 받는 최대의 공여 수혜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체 인구의 40%가 유엔이 정한 빈곤선인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고, 젊은층 대다수가 실업자인데다, 문맹률이 29%에 이를 만큼 민중들의 삶은 피폐하다. 무바라크 정권은 오는 9월 대선을 앞두고 강력한 정적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등 야권에 대한 탄압의 고삐를 죄어왔다.


튀니지·예멘·알제리·요르단 등에 이어 이집트에서도 폭발한 민중시위의 향후 전개 양상은 아랍권 전체의 거대한 지각변동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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